-동시대 장애 예술의 급진성
아르코미술관+주한독일문화원 공동주체 2022.11.15
음성언어와 수어를 사용하여 웨비나를 진행한다. 배리어 프리로 진행하며, 한영 동시통역, 한국어 수어통역, 한글 문자통역을 제공했다.
유화수(장애예술 기획자, 작가)
모두를 위한 00이라는 슬로건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에게만, 특정 장애인에게만 필요한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지원해야 한다.
모두를 위한이라는 수식어는 일반화나 소모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정서적인 작용을 함께 도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단지 기술적, 물리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정신적 상호작용을 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작품명: <데이지와 이상한 기계>
수어와 관련된 컨셉, 비장애인을 통해 장애인에게 전달되는 메시지들이 왜곡되기도 하고, 잘 전달되기도 하는 과정에서 충돌하고, 전달되고, 작용하는 과정을 표현했다.
디르크 조르게(장애미술 작가)
우리는 어떻게 정상성을 정의하는가? Ablism 능력주의는 차별적인 언어이다, 이것과 관련해서 작업을 진행했다.
Paint it Black(Live tatto performance) 2008
세 개의 점은 맹인이 독일에서 대중교통을 사용할 때 비장애인이 인식할 수 있도록하는 표식.
자신의 장애를 영구적으로 또 공개적으로 각인시킴.
Museum of Blinding Arts (2022)
Cure Department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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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이 예술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성경에서도 장애인은 기적이 있어야 하는 사람들로 인식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포용적인 큐레이팅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장애인은 예술가라는 주체라기보다는 전시되는 객체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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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에 있어서 치유라는 개념은 생각해봐야 한다. 장애를 ‘치유’(Fix)함으로서 현 상태를 불완전한 상황으로 정의하기 때문에 이는 계층적이고 부정적인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장애를 치유한다는 물건(528hz 소리굽쇠)는 헛된 희망을 심어줌으로서 부를 창출하는 사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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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페지오(대체의학 시장에서 특정 주파수가 치유의 도구로 사용)는 지양되어야 한다.
와......자신을 먼저 소개하는데, 자신의 생김새부터 입은 옷차림 등 비장애인들이 시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정보를 말로서 같이 소개했다.
참여자들 간의 질의응답과 토의
이승주:
3-1. 장애 예술에 있어서 장애인 당사자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장애 예술의 흐름이라는 것이, 큰 판 안에서 또 대상화되고 객체로 존재해 온 것 같다.
그들이 어떻게 “주체”로서 끌어낼 것인가. 장애 작가들도 자신의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른 것을 다루기도 한다.
장애라는 정체성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지 않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 흐름 반영
창작 지원, 장애 비장애인 연합 사업도 지원하고 있다.
“사회적 장애” -> 퀴어 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만해도 개인적으로는 장애 예술이라는 매게를 하지 않았다. 장애 미술을 청와대에서 사는 것은 단지 소외자의 이야기를 탈색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베리어 컨시어스” 많은 사람들이 심리, 물리적인 제약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한다.
정현:
1.
장애 예술을 특정한 분야로 정의하기보다는 유연하게 유연하고 구분되기를 바란다. (비장애와 장애를 넘나들면서) 최근 사회에서 장애 예술이 특수하고 소수적이다라는 인식이 된 것 같다.
2.
포용적인 큐레이팅이 장애인에 대한 문화교육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감각의 분할”-랑쉬에르(?)
1.
역사에서 보여진 장애인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는 왜 반복되었는가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한국에서 장애인의 표현 영역은 어디까지인가?
창작 스튜디어라는 것이 창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 작가들간의 연관되고 사회 연결고리를 커넥션이 생기는 공간이기도 하다. 제도적 장애를 인정받는 것과 정신적으로 장애를 인정받는 것이 균형을 잡혀서 가야한다.
1.
베리어 프리라는 것이 매 개를 제공하지만 그것이 과연 이해될 수 있는 번역인가?
4-2. 장애인이 왜 미술관에 없을까? 장애가 없음에도 미술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들. 미술을 상위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다. 장애인들이 물리적인 제약 뿐만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인 제약이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Kate Brehme:
1-1. 급진적인 큐레이팅이란 장애라는 것은 누군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것을 이해해야합니다. 포용성, 접근가능성과 관련된 큐레이팅은 장애인에게 중요하다. 남성, 백인, 능력있는, 단순히 장애에만 연관할 것이 아니라 이를 사회적으로 연결해야 한다. 장애인들도 단순히 관람과가 아니라 발언할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한다. 사회에서 자신이 가진 특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행동할 수 있다. (백인 장애인 예술가, 기획가인 자신) 예술불균형이 어디에서 오는지,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힘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지, 이것도 포용적인 큐레이션이다.
2-1. 문화적인 기관을 보면 구분이 되어있다. 문화, 예술 교육과 큐레이팅 교육이 분절이 되고 있다. 후자가 더 상위의 교육인 것 같다. 이 두 가지는 위계구조를 가지면 안된다. 장애인에게도 문화 예술 공간이 필요하다. 또, 이것을 넘어서 큐레이팅이 함꼐 상호작용해야한다. 문화 예술 교육에는 접근성, 포용가능성 다양한 옵션을 제공. 큐레이팅에 있어서도 휠체어에서 탄 사람도 볼 수 있도록 해야 하는 등. 전시를 다양한 감각 기관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물리적인 접근성에 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억압 체제에 대해 고려해야한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미술관에 갔을 때 장애인을 무언가를 극복해야하는 사람들로 대부분 보는 것 같다. 장애에 대한 기존적인 내러티브를 완전 뒤바꾸는 것을 하고 싶다.
유화수:
4-1. 장애와 관련된 작업을 했을 때 편견을 겪기도 함.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가 사회적인 문제이다. 전시장에 장애인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이다. 참여 장애인이 없다는 점. 비장애인 일반 관객이 왔을 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장애에 대한 담론의 확장이 필요하다.
장애 예술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하지 않더라도 예술에 장애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오늘 나온 이야기 중에 제외된 이야기가 한국의 장애예술이 장애등록을 받은 사람, 다시 말해 할 수 없음을 결정받은 사람들의 전유물로 여겨진다는 점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ADHD 진단자나 미등록 지적, 자폐당사자의 존재가 부각되고 있으나 실제로 이들은 장애예술과 함께 문화지원을 전혀 받을 수 없습니다. 경사로, 수어, 소리통역은 넘쳐나지만 쉬운 읽기(Easy read)는 논의 논의 초기에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장애인들이 접근가능한 창작방법에도 한계가 큽니다. 향후 각 국가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부분적으로 실시간으로 답변드린 부분도 있습니다만, 2021년에는 '잇터뷰'라는 (잇다+인터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국가로부터 공인된 장애 뿐 아니라 난치병, 질병, 퀴어 등 다른 정체성을 지닌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보는 프로젝트도 진행해 보긴 했습니다. 쉬운 읽기와 같은 경우도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합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엑스포인 오티즘엑스포에 참여했을 때 발달장애인을 위한 쉬운 계약서, 쉬운 정보 등을 만들어내는 소소한소통이라는 사회적기업 부스를 봤습니다. 전시 큐레이팅과 관련해서 서울시립미술관과도 읽기의 접근성을 낮춘 프로젝트도 진행했더라구요. 한번 관심있게 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소소한소통 : http://www.sosocomm.com/portpolio/ptp_view no=176&performType=PETC&search_gubun=&search_word=
인터뷰: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6OVRH0Mb0RkzklgrIB2ymmRsAShDjkB
마무리는 두 주먹을 꽉 쥐고 수어와 음성으로.
기존에 장애에 대한 회의나 웨비나에 참석했지만, 친 장애적인 웨비나는 처음이었다. 수어를 하는 것도, 자신의 상태를 묘사하는 부분도 인상 깊었다. 사회가 하나되는 기분이 이런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