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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로 태어나서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

한승태 씀.
케이지란 도구는 갇힌 쪽이나 가둔 쪽 모두에게서 최악의 자질을 이끌어 내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19pg
폭력적인 역사가 사람들에게 남긴 가장 큰 해악은 우리 삶의 변화가 한두 사람의 지도자 덕분이라고 맞게끔 만든 데 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의 성공을 두 손으로 일군 당사들은 역사의 들러리로 물러나 버렸다.
~ 메마른 강을 다시 흐르게 하는 것은 소나기가 아니라 길고 지루한 장마다. 바짝 말라붙었던 한강 역시, 한 줌의 ‘위인들’이 뿌린 소나기가 아니라 이름 없이 살다간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모이고 쌓여 다시 흐르게 됐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67pg
그는 아무리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도 자신의 삶을 있는 그래도 보는 용기를 지닌 사람이었다. 82pg
내가 코 푼 휴지 개수를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듯 그들이 애써 폐기시킨 병아리 수를 알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93pg
이 병아리들도 똑같이 비명을 지르고 살려고 발버둥 치지만 말이다.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은 연민의 대상도 되지 못하는 것이다. 94pg
닭을 살찌우려면 땅을 밟지 못하게 하고 매우 덥고 어두운 곳에서 길러야 하며 몸을 돌릴 수도 없을 정도로 비좁은 칸막이나 바구니에서 자게 하라. - 루시우스 콜루벨라(서기 1세기 로마 농학자) 95pg
비천할 정도로 나약한 존재들의 저항이 때로는 효과를 거두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들의 저항은 피부가 아니라 양심에 상처를 남기는 것이다. 100pg
조금씩 전문 용어가 가지고 있는 마법 같은 힘을 이해할 수 이쓸 것 같다. 병아리들은 ‘처리’할 때는 죽인다. 잡는다고 하는 대신 불량품을 도태시킨다고 중얼거린다. 하자가 생긴 물건을 처리하는 거다. 이건 도태다. 도태, 도태, 도태. 어느 순간엔 정말 닭을 죽이는 것이 문서를 파쇄하거나 삼각 김밥을 폐기하는 것처럼 사무적으로 와닿을 때가 있다. 도태 대신 B52나 비활성화라는 말을 썼다면 사무적인 순간이 더 늘어났을 것이다. 121pg
돼지의 정형행동(지속적이고 반복적이지만 아무 목적이 없는 행동) 168pg
돼지 송곳니와 꼬리에 관하여 202pg
돼지 발톱과 발톱 삭제에 관하여 208pg
돼지의 겁과 경계 인식 219pg
돼지의 청결성과 목욕 245pg
결국 차별은 혐오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완성된다. ‘다른’ 존재에 대한 혐오와 ‘우리 편’에 대한 사랑. 218pg
고대 로마의 귀족들은 이성의 노예들이 보는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성적으로 문란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노예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횡성의 양돈장에서 보았던 일들도 같은 논리로 이해한다. 그건 그들이 폭력적이어서가 아니라 동물은 물건이라고 믿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263pg
농축산업 종사자는 일반적인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았다. 경쟁력 확보를 위해 농업 분야를 이러한 규정들의 예외 영역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345pg
→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실시한 정책이 오히려 농축산업에 대한 인식을 떨구었을 수도 있다.
물론 자연에게 가장 좋은 건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겠지만 만약 이용을 해야만 하겠다면 골프장 같은 시설보다 인간과 동물이 건강하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었다. 354pg
“개 키우는 게 다 그런 거지 뭐.” ~ 내 자신이 쓸데없는 참견쟁이처럼 느껴졌다. 이곳의 물을 마시고 이곳의 쌀을 먹는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내가 뭐랗고 그게 더럽고 끔찍하다고 난리란 말인가? 나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을 이론서 한 귀퉁이에서나 찾을 수 있을 법한 기준을 가지고 폄하하고 있는 걸까? 355pg
(개를 전기 충격기로 도축하는 모습을 보며) 어저면 육식에도 부정할 수 없는 미덕이 있을지 모르고 개고기 업계에도 스스로를 정당화할 여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날 본 모습 중에 회색 영역에 속하는 건 하나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잘못되어 있었다. 391pg
병아리 떼를 폐기시킬 땐 느끼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개에게는 고함을 지르는 것만으로도 느껶다는 점은 인간 사회 속에 자리 잡은 동물들이 온전한 삶을 누릴 ‘자격’을 얻기 위해 거쳐야 할 단계를 암시하는 듯 보인다.
먼저 그들은 상품이 되어야 하고 다음으로는 아주 비싼 상품이 되어야 하며 궁극적으론 인간의 ‘친구’ (그러니까 감정의 교류가 가능한 상품)가 되어야 한다. 너무 맛있거나 아니면 너무 못생겨서 ‘친구가’가 될 가능성이 없는 동물들의 삶은 앞으로도 고달플 수밖에 없을 것 같다. 431pg
동물에게 충분한 시간을 보장해주는 일은 충분한 공간을 보장해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 나는 동물이 삶의 사이클 한 차례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 정도가 적당하다는 의견에 공감하는 편이다. 433pg
물론 모든 가족이 싸운다. 그들은 그렇게 싸우고 흉터를 남기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돈 못 버는 자녀와 그들을 먹여 살리는 부모가 충돌하면 숨겨왔던 광기를 폭발시키게 되고 서로를 불구로 만들어버린다. 그러고 나면 얘꾸나 절름발이가 된 것처럼 누구도 예전처럼 걸을 수 없고 예전처럼 서로를 바라볼 수 없게 된다. 449pg
인간과 동물 사이에도 비슷한 돌담이 세워져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나쁜 것이 닭에게는 정당한 것이 되고 돼지에겐 당연한 것이 되고 개에게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된다. 나는 인간과 동물이 똑같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물론 인간과 동물은 다르다. 하지만 고통 없이 살고 싶어 하는 점에 잇어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적어도 우리가 주장하는 만큼 크지는 않은 듯싶다. 457pg
(코르네이섬 붉은 돌담 이야기) 비록 벽을 멋대로 무너뜨릴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다. 만약 파수꾼이 이방인에게서 자신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면 벽에서 돌 하나를 빼낼 수 있었다. ~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이 쌓여갈수록 벽은 다시 낮아지고 또 낮아졌다. 458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