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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Bar 포럼 카드뉴스 대회_2022

With 김승주, 김은진, 이규리

이 Peace Bar Festival은 2022년 세계 평화의 날을 기념하여 열린 교내 카드뉴스 공모전이었다. 범지구적 평화 메세지, 기후변화와 평화라는 2개의 주제 중 팀원들과 상의를 거쳐 ‘기후변화와 평화’를 주제로 선택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고민해야 했던 것은 ‘기후적 평화란 무엇인가’였다. 더 구체적으로는 세계 각국에서 지구 온난화와 자연 재해, 기후 재난 등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지금, 우리가 힘을 실어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이었다. 여러 번의 회의 끝에 우리는 ‘기후 젠트리피케이션’과 관련된 글을 적기로 했다.
‘기후 젠트리피케이션’이란 고소득층이 기후 재난 상황을 이용하여 저속득층이 거주하는 값싼 토지와 주택을 산 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판매 및 임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 사회 문제를 탐구하면서 기후 재난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의 거대한 비극처럼 보이는 기후 재난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작은 위험 정도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앗아가는 지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이를 통해 우리 팀은 ‘요한 갈퉁’의 평화 이론을 접목시켜 기후적 평화를 정의하기로 했다. 갈퉁이 정의한 ‘적극적 평화’는 기후 재난의 상황에서 물리적인 피해뿐 아니라, 그 재난 상황에서 발생하는 2차적인 폭력(기후 젠트리피케이션) 등의 발현을 저지하는 개념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관점에서 ‘기후적 평화’를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카드뉴스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기후 변화 상황이 만들 수 있는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에 관해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고, 더 이상 자본주의적인 격차들이 기후 담론에서도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이 덕분에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된 글을 쓰는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새로운 내용을 또 알게 되어서 뿌듯하고, 이를 알게 된 만큼 환경과 불평등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갖고 행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래는 이 카드뉴스 공모전을 준비하며 조사한 내용들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한 글이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_ 미래를 위한 서로 다른 책임>

46억 년의 지구 역사상 인류가 등장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인류의 역사는 지구의 시간 중 0.004% 정도만을 차지하지만, 그 짧은 역사는 지구에 전무후무한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역설 때문에 2000년, 대기학자 Paul Crutzen을 시작으로 많은 환경학자가 현재 상황을 홀로세가 아닌 ‘인류세’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인류세란 ‘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시사하는 것은 인류가 새로운 지질시대를 열 정도로 환경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전 세계적인 환경 및 기후 문제 폭증에 대한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인류가 불러온 지구의 변화는 많은 대가와 희생을 요구했다. 2020년 유엔 재난위험경감사무국(UNDRR)은 ‘최근 20년간 전 세계에서 총 7348건의 재해와 약 3400조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음을 알렸다. 그들은 이전 1980~1999년 20년과 비교했을 때 재해 발생 횟수와 경제적 손실이 모두 2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이러한 피해가 기후변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여기서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재해 사망의 91% 이상이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기후 문제에서 지속적으로 원인을 제공한 것은 서구 선진국들이지만, 타격을 입은 것은 개발도상국들이었고, 그중에서도 빈곤층은 가장 막중한 피해를 떠안아야 했다. 특정 개인이 가진 사회·경제적 지위와 관계망이 재난 피해와 연관될 수밖에 없으며, 자연재해가 더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꼬집은 셈이다.
인류세가 던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책임’이라는 메시지는 심각한 기후 재난이 발생하고 있는 현시대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이 자칫 사회 구조상의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세는 신중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자본주의 체제는 문명의 성장을 일궈냈지만, 인간은 이윤을 얻기 위해 자연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까지 착취했다. 이러한 체계가 만들어낸 수직적 관계 구조가 기후 담론에서까지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 즉, 생태 위기에 관한 책임이 개인에 따라 상이함에도 모두에게 동일한 수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후 재난에 대한 책임을 논할 때, 환경 위기의 생산과 감수를 포괄하는 권력 관계를 인정하고 그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미래와 환경 그리고 기후에 관한 문제를 논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각자의 책임을 바로 인지하고 그 무게를 부담해야 한다. 둘째, 상대적으로 적은 책임을 진 사람들의 사회적 배경과 여건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무분별한 비난을 지양해야 한다. 셋째, 각각의 사회적 위치와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을 바로 알고 책임을 지기 위해 이를 적절히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제언들은 세계, 국가 정부, 지방기관, 개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대상에 적용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방법을 통해 기후 재난이라는 전 인류적 문제를 각자의 방식대로, 각자의 몫만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환경파괴와 기후 재난, 그리고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가 아니다. 기후 위기라는 문제 앞에서는 무책임도, 전체주의적 태도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렇다면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인류가 어떠한 방식으로 그 책임을 분배해야 할지에 대한 성찰과 고민은 불가피한 것이 된다. 오늘날, 거대한 인류 집단을 구성하는 다양한 주체들은 모두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후 재난문제에 대한 책임이 사회적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터무니없게 분배되어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돌아보아야 한다. 앞으로 우리 인류가 사회를 위해 서로 다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모두가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