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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소준철(2020), 푸른숲
‘여성 재활용품 수집인의 생애와 생활에 대하여’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주거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 28pg
경제, 문화, 과학기술 등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도시에서 가시적인 가난은 꽤 빠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도시의 가난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비가시적일 뿐이다. (반지하 등)
“이 직업, 이 노동은 여전히 비공식적이다.”
어느 제도와 산업에서도 속하지 못한 ‘비공식’에는 낯선 공포와 무서움이 서려있다. 62pg에 나오는 고용 형태만 해도(건물주가 할머니를 고용하여 적절한 계약 없이 노동을 지시함) 그/ 그녀들이 재활용품 수집을 넘어 다른 불평등한 고용에도 노출되어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비공식적인 유사 고용) 31pg
“여성노인은 여전히 일과 가사라는 두 집을 함께 짊어지고 골목을 걷고 있다.” 90pg
여성노인의 서사는 마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것처럼 보인다. 가족에게 헌신하고도, 늙어서는 자신의 안위뿐만 아니라 타인의 것까지 책임져야 한다. ‘가사’라는 것이 여성의 것이라는 가치관이 잡히지만 않았어도 세상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린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불완전한)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그리고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재활용품 수집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이 과정 어디에서도 노인들의 노동 시간과 노동 강도가 고려되지 않으며~” 107pg.
어쩌면 비공식적인 산업 구조에 속한 노동자가 받을 수 밖에 없는 대우라는 생각이 든다.
“산업은 노인을 은퇴자로 이해하지만, 복지 정책은 노인을 복지 사업의 참여자로 이해하는 상호모순적인 상황이다.” 143pg.
“노인 일자리 사업은 한국 사회가 지금의 노인들에게 은퇴 후에 더 낮은 질의 노동을 하여 생존하라는 생애 경로를 제시하고 있는 예로 여겨진다.” 144pg
노인 일자리는 은퇴자임에도 계속 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회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에 따르면 노인 일자리는 한 사람의 목숨과 생활을 좌우하는, 쉬지 못하는 한 인간의 소중하고도 감히 비애적인 기회이기도 한 것 같다.
“노인에게는 가사노동을 줄일 수 있고,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노동이 필요하다.” 146pg.
자발적 창조 공동체의 주체가 꼭 젊은이들일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자발적 창조 공동체란 자발적 공동체와 창조 계급 이론을 융합한 개념)
“우리는 공간 자체의 속도를 줄일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 건 아닐까?” 194pg.
(폐지 수집 노인들이 사용하는 리어카는 인도로 다니기에는 비좁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인들이 차도로 쓰레기를 운반한다. 하지만, 이 행동은 노인을 사고의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으며, 특히 밤에 위험도가 증가한다.) 골목의 폭을 시각적으로 줄이는 건 어떨까. 건물의 배치를 달리해서 자연스럽게(반사적으로) 시야각을 좁힘으로서 속도를 줄여보는 방안은 어떨까?
“동정과 시혜보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203pg
→ 우리의 관심이 향해야 할 곳에 대하여
“가시적인 빈곤이 사리진 시기다.” 205pg
“노인이 자립하는데 있어 필요한 자원들을 연결하고, 또 노인이 의존할 수 있는 사회적 관게를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한다.” 214pg
“자립이란 개인의 독존이 아닌 상호의존을 기초로 해야한다.” 229pg
“일하는 즐거움이나 자아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230pg
우리는 특정 사례만을 보고 노인의 재활용품 수거 행위를 부유한 사람들의 소일거리라고 일반화 해서는 안 된다.
“노인의 다양한 계층을 포괄하는 구상이 필요하다. 경제적인 차이, 신체적인 차이, 심리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모두가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도시가 필요하다.
노인에 대한 정의와 기준이 바로 서야 하고, 그들을 위한 공간 시각적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 ‘안전’한 도시는 도시민의 삶을 얼마나 바꿀까.

<느낀점>

명저는 독자로 하여금 여러 번 읽게 하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이 책이 그런 작품이었다. 사실 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읽고 싶은 책이 많아 읽었던 책을 다시 들여다보는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의 날카로운 사회적 부검의 자취를 계속해서 읽어 내려가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어느 날 발견해 버렸다. 그 정도로, 잘 관찰되고 잘 쓰인 책이다. 도시 소외와 재활용품 노인의 생애적 주기를 실증적이고 논리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의 모습에서 사회적 구조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다는 점도 더 없이 감명 깊었다. 가상의 인물인 ‘윤영자’를 통해 가난과 노인, 재활용 수거, 경로당과 고물상에 얽힌 사회체계와 의식들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책은 내용뿐만 아니라, 도시의 비가시적인 문제를 분석할 때 어떤 방법으로 들여다보고 접근하는 것인지 엿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사회적 소외나 경제적, 성적 불평등에 관해 관심이 있는 모두에게 이 책이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