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V 임팩트 레터 21 [청각장애를 고려한 디자인이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2023.03.15
임팩트 레터 리뷰를 시작하며
수어에 관심이 생긴 것은 작년 겨울 초입의 일이었다. 이전 글에서부터 조금씩 언급했던 세미나 ‘포용적 큐레이팅이팅이란 무엇인가; 동시대 장애 예술의 급진성’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가 그쯤이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예술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부상하고 참여하기 위해서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지 다양한 사람들이 의견을 나누었다. 비장애인이 여럿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몸들이 그 자리를 빛내고 있었다. 장애인 예술가, 예술활동 지원가, 교수, 장애인 큐레이터 등의 사람들이 말이다. 세미나는 2시간 정도 이어졌는데 마무리는 모두가 두 주먹을 쥐고 수어와 음성언어로 마무리했다. 그 광경이 참 낯설고도 설레어서 그날 수어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직접 농인들과 수어를 통해 대화를 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포용적인 큐레이팅이란 무엇인가?라는 세미나의 홍보 포스터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어 표현만이라도 배우려고 노력했다. 하나의 언어를 익히는 거니까 오래 걸리리라는 것을 짐작했으나 생각보다 더 어려워서 자꾸만 손이 꼬였다. 그래도 어렵게 연습을 이어가면서 수어가 매력적이고, 직관적이며, 표현이 풍부한 언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언젠가 농인 사회에서 내 수어 이름을 걸고 대화를 하는 모습을 그리면서 오늘 다루는 MSV 임팩트 레터를 즐거운 마음으로 골랐다.
‘청각장애를 고려한 디자인이 모두를 향하는 과정’에 관해
이 글의 문을 여는 것은 수어 사용자이자 인터랙션 디자이너인 Marie van Driessche(마리 반 드리셰)의 세미나 이야기다. 그녀는 자신과 사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장애를 ‘장애화’하는 것이 세상이라는 현실을 강조한 것이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 사회가 내게 장애를 부과하는 것일 뿐.”
마리는 장애에 대한 인식이 점차 긍정적이고 확장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회에 남아 있는 ‘장애화’ 흔적들을 공유했다. 이런 사회에서 그녀는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목표가 ‘각자의 삶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온라인 상에서 청각장애를 지닌 사람(수어 이용자)들이 편하게 인터넷 자원을 이용하기 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제시한 방법들이 청각장애인을 넘어 모두를 향해 있다는 사실이다.
마리는 읽기 쉬운 글을 구성하기 위해 신경쓰고 보조 자료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청각장애를 지닌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두를 위해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다고 설명한다.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
최근 들어서 사라 헨드렌이 쓴 책 <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을 읽다가 인상 깊은 구절을 발견했다. ‘세상에는 무한한 복잡성으로 인해 괴롭힘을 당하거나 강화된 몸이 있고, 도구의 세계가 그 몸과 경관, 다른 말로 Hardscape(하드 스케이프) 사이의 어색함을 다양하게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라는 부분이었다. 이걸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 ‘도구’가 인클루시브 디자인일 때 현 사회의 부조화를, 정말 많은 것을 바꿀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었다.
나의 어렴풋한 생각은 이번 MSV 레터를 읽으면서 사라와 마리의 말이 교차되는 것을 발견한 그 순간, 현실이 되었다. 장애는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하나의 몸이 사회와 부조화하는 것이며, 특정한 ‘도구’가 몸과 사회의 격차를 매워줄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특히, 마리가 제시한 청각장애인을 가이드 라인이 더 나은 이해와 소통을 위한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강조 했을 때는 더 그랬다.
오늘 레터에서 가장 간직하고 싶은 말 중 하나는 “프리사이즈 티셔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같은 사이즈의 옷에 욱여넣는 대신 개개인의 몸에 맞춘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것이었다. 사라와 마리의 말이 가리킨 그 교차점을 따라가다 보면, 정말로 포용적인 세상이 오고, 또 그걸 넘어서 더 나은 사람들의 경험을 바꿀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모두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원래 인클루시브 디자인이 디자인의 기본 아닌가요?’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별책부록
[Design for Aging: Designing Universally and for deaf, deaf-blind and hard of hearing] 세미나 후기
[나이듦에 따른 디자인: (시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농인을 위한 유니버셜 디자인]
새벽에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책상에 앉아 강의를 듣는 일은 대학생인 나에게 그리 익숙한 일이 아니다. 차라리 밤을 새면 모를까, 새벽 5시 반이라니…..그래도 ‘로버트 니콜라스 세미나인데 내가 어떻게 빠져!’하는 일념 하나로 제시간에 무사히 참석했다.
로버트 니콜라스(Robert Nicholas)와 척 크러쉬(Chuck Crush)의 발제가 있었는데 시니어와 시청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위해서 어떤 공간 디자인 요소를 고려해야 하는지, 또 디자이너로서 생각해봐야 할 중요한 고민거리를 배워올 수 있었다. 특히 농인 공간(Deaf Space)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고, 포용적인 디자인이 사용 주체의 삶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세미나를 진행하는 내내 수어 통역이 실시간으로 제공되고, 최상의 통역을 제공하기 위해서 15분마다 통역사가 교체되는 모습도 인상 깊었다. (덤으로 앞으로 영어 열심히 해야겠다는 교훈까지 얻었다…) 포용적인 삶의 방식을 고민하기 위해 모두가 각자의 새벽과 저녁을 바쳐 함께 했다는 것이 어쩐지 뭉클하게 기뻤다.
세미나를 마치고 책상에 앉아서 생각을 정리하다가 어느 책의 문장이 떠올라 그걸 적으면서 글을 마친다. 개인적으로 MSV와 맞닿아 있는 순간마다 이 문장을 되새기게 되는 것 같다.
“그들과 함께 싸우면서도 그들이 가리킨 미래가 실현될 것을 믿지는 않았다….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말을 진지하게 자꾸 반복하는 그들을 믿었다. 그런 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믿어지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았다.” - <집으로 가는, 길> 중
내가 글의 끝을 늘 희망찬 소망으로 맺을 수 있는 것은 누군가 포용적인 사회와 디자인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어찌보면 무책임할 수 있는 소망을 놀랍게 현실로 바꾸어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후기를 통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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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V 임팩트 메이커스는 포용적인 디자인을 위한 데이터 수집, 인터뷰 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선한 영향력을 전달할 수 이는 코넨츠를 작성합니다. 해당 리뷰는 MSV 임팩트 메이커스 1기 활동으로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