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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평안을 기원하며,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안전’_02

2023.03.06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변명 아닌 변명을 적어본다. 이번에 소개하는 MSV 임팩트 시리즈 ‘안전’은 다시 읽고 또 읽어도 끝없이 새로워서 그만 책을 정리하는 과정이 늦어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먼저 책에 대한 개괄적인 리뷰가 먼저 올라가고 세부적인 리뷰가 그 뒤를 따라야 했지만, 진심을 다해 쓰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 이번 주만 글의 순서를 바꾸기로 했다. 너그러운 양해를 구한다.

MSV ‘안전’을 통해 ‘포용적이고 안전한 공간’으로 들어가며

‘안전’이라는 가치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오래토록 가장 중시된 가치 중 하나이다. 책의 서두에도 등장하듯, 다양한 디자인이 미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을 때도, 편리성을 추구하는 시대에서도 ‘안전’만큼은 디자이너 모두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불문율로서 자리를 지켜왔다. MSV는 이번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통해 이 가치가 현대 사회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남아있을지를 추적한다. 매력적인 사례와 인사이트 중에서도 이 글을 통해 집중할 부분은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의 안전까지 포용한 공간 디자인이다.
나는 ‘포용적이고 안전한 공간’을 아주 우연한 계기로 만나게 되었다. 그중 한 예시인 ‘데프 스페이스’의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이길보라 감독의 <반짝이는 박수소리>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다. 가이드와 함께 농인 학생들을 위한 갤러댓 대학교에 방문한 저자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수어가 구축한 세상에 감탄하며 ‘본’ 말이다.
“여느 대학과 다름없이 보이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어요…… 건축과라면 ‘농건축’에 대해 공부하고 관심을 갖게 돼요. 언어학도 마찬가지예요. 각 전공이 농인의 감각과 언어, 세계를 만나면 완전히 다른 전공이 되는 거죠.”
<반짝이는 박수 소리> 156pg 중
이날 알게 된 농문화와 건축에 대한 내용은 가히 신선하고도 충격적이었다. 당시에는 데프 스페이스라는 단어가 명확히 등장하지 않는데, 이를 곧 알게 된 것은 오늘 소개할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안전’을 통해서였다. 데프 스페이스에 대한 배움은 곧, ‘시각장애인을 위한 학교 디자인’과 ‘데프 스케이프’로도 향했다. (이 순간부터 MSV가 나를 계속 놀라게 한다는 것에 더 이상 놀라지 않기로 했다…..)
데프 스페이스의 다섯 가지 가이드라인에 대해 설명하는 이미지. 이 가이드 라인은 건축가 한셀 바우만이 갤러뎃 대학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제시했다.
먼저, 데프 스페이스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어로 번역을 하면 농인들을 위한 공간 디자인이라는 의미이다. 최근에는 포용적인 공간에 대한 연구나 이해가 넓어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공간은 ‘갤러댓 대학교’이다. (갤러댓 대학은 1864년부터 설립된 농인 대학이다.) 데프 스페이스에는 다섯 개의 가이드라인이 있는데, 공간과 근접성, 감각 도달 범위, 모빌리티와 근접성, 빛과 컬러, 그리고 음향이 그 핵심 요소들이다. 수어는 엄연히 하나의 언어이다. 따라서 수어가 제 1언어인 사용자들이 주로 머무는 공간도 언어의 사용방식에 따라 변한다.
먼저, 공간과 근접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수어는 손을 중심으로 하지만, 얼굴의 표정의 변화를 읽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수어로 소통을 하고 반응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고, 상대와 얼마나 근접해 있는 지 등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감각도달 범위는 시각과 촉각으로 전 방향을 탐색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거울을 설치한다면 시각으로 후방의 상황을 탐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고, 바닥재를 잘 울리는 소재로 마감한다면, 누군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 수 있게 된다. 이처럼 데프 스페이스에서 감각도달 범위를 넓히는 것은 청각 외의 다른 감각들을 사용하고도 쉽게 공간과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익힐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모빌리티와 접근성에서는 이동 중 동선을 고려해 최대한 방해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다룬다. 수어 사용자들은 이동하며 대화를 할 때 끊임없이 주변의 위험을 감지하고 파악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담을 덜어주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빛과 컬러에서는 수어 사용자들이 선호하는 빛의 종류와 컬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빛과 색 모두 심미적 기능 이상으로 직관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이 중요하지만, 가장 놀라웠던 음향에 대해 좀 더 깊이 설명하고자 한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4호 중 ‘데프스페이스_음향’에 대해 설명하는 글과 그림. 강의자가 말하는 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벽과 바닥 등에 부딛친 뒤 학생들의 귀로 향하고 있다.
‘농인들을 위해서 공간을 설계하는데, 왜 음향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했는데, 음향이 데프스페이스에서 중요한 이유는 보청기나 인공와우 사용자들이 기기를 통해 주변 소리를 증폭시켜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때문에 잔향이 공간에 많게 되면 듣고 싶지 않은 소리까지 함께 커지기 때문에 보조기기 사용자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데프 스페이스 가이드라인을 따라 만들어진 공간은 어떤 곳일지, 또 농인들이 주축이 되어 만들어진 ‘갤러댓 대학’은 어떤 모습일지가 너무 궁금해졌다.

당신의 안전,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소개하고 싶은 것은 시각장애인 학교를 디자인한 아난드 소네차(Anand Sonecha)의 인터뷰이다. 그가 디자인한 학교는 인도 간디나가르(Gandhinagar)지역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이 곳에는 그가 장애 학생의 경험과 감각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인터뷰를 읽으면서 시각을 제외한 청각, 촉각, 후각 등을 이용해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이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왔고, 그에 따라 세심하게 바뀌는 공간의 요소들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를 읽으면서 늘 그랬듯이 공간 이용자, 사용자 중심의 디자인을 위해서는 사용자의 경험을 이해하는 시간과 그들과의 대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인도의 시각장애인 학교를 디자인했던 ‘아난드 소네차’의 인터뷰 표지.
아난드 소네차의 인터뷰.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다양한 감각을 이용해 공간을 탐색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가장 공유하고 싶었던 부분은 후각을 이용한 디자인이었다. (사실 조경학과라 사심이 조금 들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에 따르면 소네차는 ‘향이 강하고 독특한 식물’들을 작은 코트야드에 식재했다고 말했다. 또, 외부에는 망고와 자두 나무를 심어 주변 자연물들이 함께 학교에 섞일 수 있도록 했다고 한다. 이야기를 읽다보니 어떤 식물들이 선정되었을지, 정말 조경 요소가 공간을 더 풍부하게 해줬을 지가 너무 궁금했다.

MSV ‘안전’의 결을 따라서

얼마 전, 황정은 작가의 <일기> 중 발췌된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마음에 오래 남아서 MSV의 안전을 정리하는 지금 다시 떠오른다.
건강하시기를. 오랫동안 이 말을 마지막 인사로 써왔다. 불완전하고 모호하고 순진한 데다 공평하지 않은 말이라는 것을 알지만, 늘 마음을 담아 썼다. 당신이 내내 건강하기를 바랐다. 지금도 당신의 건강,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우리가 각자 건강해서, 또 봅시다. 언제고 어디에서든 다시.
이 글은 전세계에서 오늘 이 순간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생활과 재난,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세상의 현재를 기억하게 한다. 모순적이게도 안전이 없는 모든 경험에서 ‘안전’의 중요성을 느끼는 때인 듯 하다. 다만 MSV의 안전은 충분히 기능적이고 매력적이면서도 ‘안전할 수 있음을’, 또 그 실증적인 방법을 함께 제시했다. 새로운 해결책과 포용적인 생각들에 마음이 벅차오르는 지금, 황정은 작가의 말을 빌려 당부의 말을 전한다. 당신의 안전,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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