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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하미나 저.
자기 삶의 저자인 여자는 웬만큼 다 미쳐 있다. 6
정신의학 교과서에서 남성의 우울은 여성의 우울과 달리 성 호르몬 보다는 사회문화적 요인으로 설명된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 역시 성호르몬을 갖고, 또 특정한 생애 주기를 경험하지만,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정신질환을 진단하는 데에 주요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24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Maya Ducenbery
“여성과 사회적 빈곤층이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을 더 많이 보인다면 이는 아마도 의학이 이들 계층의 증상을 탐색하는 데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 28
정신의학 교과서는 신체형 장애를 겪는 환자들이 신체 증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바가 분명히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에 대한 증거로 환자들이 자신의 신체 증상에 대해 “기분 좋은 무관심Labelle indifference”을 보인다고 말한다.
다른 의사나 유명하다는 병원을 전전하는 닥터 쇼핑과 비정상 질병행동abnormalilness behavior을 보인다. 또한 환자가 병자 역할을 통하여 학업이나 직장에서 겪는 갈등과 일상적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이득을 얻으려는 동기가 엿보일 때가 많다. 36
언어화되지 못할 때, 고통은 심화된다. 여성, 사회 하층민, 농촌 거주자, 저학력자, 지능이 낮은 사람에게서 신체형 장애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이들의 스트레스 관리 및 대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들의 고통이 주류 학문의 담론으로 제대로 언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앎의 기본은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다. 특히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이 어느 위체에 서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게 익숙한 지식은 무엇이고,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지, 또 내가 말하는 진실이 특정 집단에서 더 호소력을 갖는다면 왜 그런 것인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어떤 지식이 다른 집단의 고통을 설명하는 데에 계속해서 실패해 왔다면 스스로 물어야 한다. 지금 이 지식은 누구를 위해 봉사하고 있는가? 39
고통을 해석하는 방식은 한 개인이 지닌 문화적, 지적 자원에 따라 달라진다. 고통의 표현 역시 가족, 학교, 미디어 등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개념이 작용한 결과이다. 50
진단은 해방인 동시에 억압이다. 진단은 정상과 비정상, 건강과 병리, 현실과 환각, 진짜 고통과 가짜 고통 사이에 경계선을 긋는다. 진단은 미스터리했던 증상들에 이름을 붙여주고 나와 같은 사람을 찾게 해준다. 아무도 밍더주지 않았던, 심지어 나조차도 승인하지 않았던 고통을 인정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멋대로 규정하고 낙인찍는다. 수치심을 준다. 삶을 재단한다. 과거를 멋대로 해석하고 현재의 정체성을 건들며 미래를 예언한다. 62
논문 <정서적 고통의 의미와 우울의 사회적 구성> 이유림 저.
저자 이유림은 이러한 흐름에서 제약산업의 자보니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며 질병의 ‘사회적’ 구성이 질병의 ‘기업적’ 구성으로 대체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우울의 약료화’가 우울증은 심각한 질환이기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고, 병원에 가면 약으로 쉽게 해결할수 있다는 이중 메시지를 준다고 말한다. 항우울제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자기관리 방법의 하나로 여겨지면서, 개인의 고통에 내재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정치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사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로 환원하게 만든다고도 지적한다. 103
이유림은 “항우울제는 현시대의 구조적 힘과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상이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물질이다”라고 말한다. 104
아돌프 마이어Adolf Meyer와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의 정신질환에 관한 네 가지 치료적 관점
우울은 그게 어떤 종류의 생각이든 ‘나’를 향한 몰두와 관련이 있다. 자아가 강조되기보다 자아가 해체될 때, 그래서 애초에 중요한 문제가 아니게 될 때, 마음은 더 평온해진다. 114
많은 여자들이 아빠보다도 엄마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이를 전하면서도 사실 걱정스럽다. 정신의학에서 정신질환과 모성애를 연결 지으며 ‘나쁜 엄마’를 비난해 온 역사가 유구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고통을 증언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여성혐오에 기대는 것은 아닐까. 150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경험을 말하며 우는 여자는 드물었다. 덤덤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경험들은 이들에게 여전히 상처이지만, 이미 많이 울었고 수차례 반복해서 다시 말해왔으며, 이 사건을 개인의 일로만 받아들이거나 자신의 입장에서만 말하지 않았다. 156
타인이 겪었다면 분명 학대나 폭력이라고 불렀을 일들을, 스스로가 겪었기 때문에 고민하고 질문했다. 자신의 경험은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됐다. 157
나는 모순적인 두 가지 상태를 동시에 얻으려 애쓰고 있다. 피해를 인정받되, 피해자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받기. 이것이 내게 고통이었음을 말하되, 나를 무너뜨릴 정도의 고통은 아니었음을 말하기. 별일이 있었으되, 별일이 아니었음을 드러내기, 일이 벌어진 것은 어디쯤에서 분명 나를 취약하게 만든 원인이 있었으며, 그 원인 역시 스스로 가장 열심히 탐구하고 있다는 것을 보이기. 162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 안주연 저.
모두가 바쁘고 힘들지만 과중한 업무와 자기 관리를 해내는 상황에서, 이를 버거워하는 나는 끊임없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나의 고통은 제대로 생활을 관리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이때 그나마 속 시원히 나의 고통을 인정해 주고 ‘잠시 멈춤’을 허용하는 것은 진단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과한 노동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회에서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환자로 본다는 뜻도 된다. 195
정승화는 자살이 의료화되고 우울증과 연결되면서, 결국 개인적인 치유 문화의 논리 안에서만 설명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공적, 정치적 내용이 텅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238
세상이 자신을 환자로 보면 환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세상이 자신을 미친년으로 보면 미친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들에 대한 말과 글이 아니라 이들에 의한 말과 글이다. 무엇보다 주요한 의사결정권이 이삼십대 여성에게 직접 주어져야 한다. 261
내 상처가 보편적이라는 데에서 구원이 생길 수도 있지만, 내 상처가 유일하고 고유하다는 데에도 구원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어. 특별한 상처임을 인정받는 거니까. 283
인이자 돌봄 제공자로서 내가 겪은 딜레마는 연인의 병증이 앞으로 낫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즉 병증을 연인의 정체성 중 하나로 여기기로 결정하는 태도와, 동시에 연인의 병증을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며 부단히 그것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284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