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은 문장>
“대단히 일반적이고 선의의 교육을 받은 그 애들은 주로 사람들이 유대인을 죽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에 대해 배웠다. 오직 죽은 유대인들만 접해본 것이었다.” 14
“유대인의 고통스러운 과거에 대한 대중의 엄청난 관심이 살아있는 유대인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21
“안네의 일기, 살해된 유대인이 내려주는 그런 은총과 사면이라는 선물이야 말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안네의 은신처에서, 그가 쓴 글에서, 그가 남긴 ‘유산’에서 너무나도 간절히 찾고 싶어하는 것이다.
“명성과 같은 무언가에 가까이 갔던 기록들은 오직 은폐라는 똑같은 규칙, 자신을 박해한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예의 바른 피해자가 되라고 강요하는 규칙을 준수함으로써만 그럴 수 있다.” 37
“박물관이 이야기의 일부만 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내가 말하자 박물관이 전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에게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그렇게 하으로써 유대인이 부유하다는 생각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73
“<하느님께서 시온과 예루살렘의 슬퍼하는 이들 가운데서 당신을 위로 하시기를> 이 절에서 하나님을 가르키는 말로 사용되는 단어는 ‘하마콤’인데 이것을 그대도 옮기면 ‘그곳’이라는 뜻이다. “ 96
→ 그곳이 당신을 위로하기를
“오히려 그 유대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전통을 거부하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무기로 변한 수치심의 한 형태다.” 105
“이런 이유로 하누카식 반유대주의는 종종 유대인들을 행위자로 이용한다. 죽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멋진 유대인들, 현재 멋지지 않은 유대교 문명의 구체적인 면모를 뭐든 기꺼이 포기할 의향이 있는 유대인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106
“비극은 그들이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일이 애초부터 선택지에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113
우리는 누굴 사랑하는가?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강력한 문구에 이끌려 서점에서 책을 집어 들었다. 죽은 유대인이라고? 왜? ‘죽은’이지?라는 의문이 읽기 전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왼쪽으로 넘어간 페이지가 늘어날수록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유대인을 떠올리면 어떤 단어들이 생각나는가? 개인적으로는 홀로코스트, 학살, 제노사이드라는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하나님이라는 종교적 단어들과 부자, 노벨상 등 그들이 성취해 낸 무수한 업적들이 떠오른다. 이 연관어들이 내 머리속으로 들어오게 된 경위를 살폈다. 모두 죽은 유대인의 것들이었다. 특히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들이 학살을 경험했던 그들의 민족 역사라는 점에서 내가 알고 있는 유대 민족들의 이야기가 모두 한참 과거의 것들이라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유대인 가족 사이에서 자라, 성인이 된 지금까지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거 유대인들의 상황과 경험’만’을 배우고 답습하며, 현재 살아있는 유대인들에게는 또 다른 문화적, 구조적인 소외와 불평등을 비가시적으로 자행한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밝힌 이야기는 충격이면서도 이 사회가 어떤 유대인을 선호하는지를 알려준다. 유대인과 관련된 관광 명소 중 한 곳인 ‘안네 프랭크의 집’은 세계 각국에서 방문하며 사랑받는 공간이지만, 정작 그 곳에서 일하는 유대인 직원은 유대교 전통 복식을 금지당했다. 근무 중에는 사람들에게 정치적, 종교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말이다.
깊게 자리 잡은 편향적인 시선과 그 관점에서 벗어났을 때 살아있는 유대인이 받는 불편함과 차별들을 보면서 이 문제가 단지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소외와 불평등은 끊임없이 중첩되며, 타인을 바라보는 틀을 만들고, 대상을 그 틀 안에 가둔다. 또 더욱 위험하게는 대상을 그 틀 안에서만 사랑하고 관심가진다. 우리의 세계가 한 순간에 개인의 틀 안으로 축소할 수도 있다는 감각이 무섭도록 위험하게 느껴졌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지, 그들을 정말 생각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 과거에 혹은 아주 일부의 모습에 매몰되어 그들 자체를 못 바라보고 있지는 않는지를 다시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향한 나의 열정과 관심의 방향성을 고민할 때 다시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