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2020), 사계절
<밑줄 그은 문장들>
20pg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25pg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에 푹 빠졌을 때는 삐삐가 ‘말랼광이’라고 하기도 했다. 다은이에게는 말괄량이 삐삐가 ‘미치광이’ 같은 느낌이었을까?”
37pg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41pg
“나는 어린이들이 좋은 대접을 받아 봐야 계속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 ~ 내 경험으로 볼 때 정중한 대접을 받는 어린이는 점잖게 행동한다. 또 그런 어린이라면 더욱 정중한 대접을 받게 된다. 어린이가 이런 데 익숙해진다면 점잖음과 정중함을 관계의 기본적인 태도와 양식으로 여길 것이다. “
45pg
“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53pg
“이런 악몽과 같은 무서운 것들이 어린이의 어떤 면을 자라게 한다는 것을. ~그러니 어른들이 어린이에게 해 줄 일은 무서운 대상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마주할 힘을 키워 주는 것 아닐까.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을 응원하고, 부드러운 손길로 다독이면서.
~ 하지만 모든 무서운 일이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청소년이, 어른이 ‘여성’이기 때문에 무서워하게 되는 그 많은 일들이 모두 그렇다.”
102pg
“어떤 어린이는 여전히 TV로 세상을 배운다. 주로 외로운 어린이들이 그럴 것이다. 어린이도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면, 가장 외로운 어린이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면 좋겠다.”
164pg
“다섯 살 어린이에게는 삶이나 죽음을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그 어린이는 다른 사람의 의지로 인해 죽었다.
191pg
“인류학자 김현경이 <사람, 장소, 환대>에서 ‘존비법의 체계는 인간관계가 원활하게 굴러가는 데 필요한 감정 노동을 아랫사람 몫으로 떠넘기는 문화와 연결되어 있다’라고 지적한 대로다.”
192pg
“나는 어린이들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어린이의 말에 더 많이 귀를 기울이겠다고 다짐한다. 어린이가 표현한 것만 듣지 않고, 표현하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겠다고. 어린이가 말에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어른이 되겠다고.”
197pg
“어린이는 어른보다 작다. 그래서 어른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큰 어른과 작은 어린이가 나란히 있다면 어른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
201pg
“어린이와 어른의 척도가 이렇게 다른데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는 몸집이 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동안 나는 불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격차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여러 소수자들에 대해 내가 얼마나 무지하고 둔감했는지 깨닫게 된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 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209pg
“노 키즈 존이든 노 배드 패런츠 존이든, 차별의 언어인 것은 마찬가지다. 쏘아보는 쪽이 어린이인가 부모(실제로는 엄마)인가가 다를 뿐이다.
219pg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221pg
“(동네 도서관에서 게시판을 통해 어떤 말을 들으면 속상한 지를 어린이에게 물었을 때)한 어린이의 메모가 눈에 띄었다. ‘엄마가 자꾸 모기버섯 먹으라고 할 때’라고.”
226pg
“나는 자극적인 연출보다 바로 이 점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를 감상하고 싶어 하는 것. ~ 어른이 어린이를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기중심적으로 사랑을 표현할 때, 오히려 사랑은 칼이 되어 어린이를 해치고 방패가 되어 어른을 합리화한다. ~’좋아해서 괴롭힌다’는 변명이 얼마나 많은 폐단을 불러왔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어린이를 감상하지 말라, 어린이는 어른을 즐겁게 하는 존재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큰 오해다.
239pg
“어린이들에게는 서운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린이 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 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점검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 나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느낀점>
며칠 전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같이 타고 있는 한 어린이를 봤다. 아무리 급정차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흔들흔들 거리는 버스 안에서 쇠 봉 하나를 잡고 가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그러던 중 자리 하나가 났고 어떤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 앉으려고 하다가, 그 아이를 보고는 흔쾌히 양보했다. 어린이는 몇 정거장을 자리에 앉아 가더니, 내릴 때 재빠르게 아주머니께 손을 흔들어보였고, 혹시나 자기의 감사 표시를 보지 못했을 지 내심 걱정이 되었는지, 버스에 내려서도 손을 크게 흔들어보였다. 그 과정을 보면서 든 생각은 그 어린이처럼 모든 어린이들이 세상의 어른들이 자신을 아낀다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의 양보도 꼭 필요하지만, 어린이가 먼저 봉 하나에 의지해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며 버스에 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마음에서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읽기 편안하고 따뜻한 글이나, 결코 안에 담긴 가치가 가벼운 글은 아니다. 읽는 내내 나는 작가님과 어린이들의 사랑스럽고 깊은 울림이 가득한 이야기들을 머릿속으로 그리면서 행복했다. 하지만, 에피소드 하나하나 마다 생각하고 반성하고, 바꿔야 할 사회의 낡은 가치들을 인지할 수 있었고, 어른으로서 어린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를 고민할 수 있었다. 어른은 모두 어린이였던 적이 있다. 과거의 일들이 흐릿하고, 내가 이미 어린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어린이들이 겪는 문제’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어린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사회적 소외와 불평등이 많고, 우리가 이 시선을 유지한다면 그 끝에는 지금보다 나은 사회가 있을 것이 분명하다. 어린이라는 세계가 어른들의 세계와 똑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하고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