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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SV_Play

MSV(2022)
Play; 라틴어 plaga에서 유래된 단어로 갈증이라는 뜻이다. Play의 뜻이 목마름에서 비롯되었듯이, 아이란 놀이에 목마른 자들을 의미한다.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들>

“장애 아동을 위한 특별한 놀이터” 7pg
나 또한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소외되고 인정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그동안 무엇을 할 당연한 권리를 빼앗겼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권리와 욕구를 채워줄 ‘특별한’,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데, ‘그들은 배제 당했다’는 사실이 내 눈을 가려 핵심을 잘못 짚은 것이다. 결국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사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깜빡했다. 그들과의 통합이 아니라, 그들을 다시 분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미래 소셜 디자이너로서 부끄러움과 중요한 책임감을 느낀다.
“놀이란 아이가 스스로 시작하고 통제하며 구조화하는 행동이라 지칭하였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
“아이의 자발성은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9pg
이 문장을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성인이 아이들의 놀이에 상당히 많은 개입을 하고 있다는 점이 첫 번째 생각이었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성인은 자유로워야 할 놀이에 학습을 강제하고, 아이의 안전이라는 명목 하에 그들의 주체적인 움직임을 제한한다는 점이 그 것이었다.
놀이에서 아이의 주체성을 어떻게 인정할 수 있을 지를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먼저 한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된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사회에서 어린이는 약자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다. 하지만, 이 말은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부분까지 침해하여 간섭해도 된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어린이에게도 ‘적절한 무관심’이 필요하다.
“코디 골드버그, 세가지 방식의 초대를 통한 포용력 있는 공간” 12-13pg
나의 육체와의 연결, 나의 정신으로의 연결, 나를 넘어서 그리고 그렇게 연결된 타인과의 연결
아이들이 놀이하는 공간 또한 최상의 감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동시에 모두와의 연결이 가능한 공간이여야 한다. 앞서 감각적이라는 말의 뜻은 시각을 제외하고도 다양한 기관을 통한 경험을 의미하는데, 이 경험들은 아이들의 놀이터를 넘어 우리 도시 공간 전체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새들은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아이들은 놀이한다.” 14pg
새가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듯이 본능적으로 삶에 있어 충실한 목적이 아이들에게는 놀이이다.
“통합놀이터를 잘 이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통합놀이터가 자택과 거리가 멀다는 응답자와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응답이 각각 50.3%, 47%로 많았다.”
놀이터는 전국에 약 2만 4천여개가 있고 그 중 통합놀이터는 20여개이다. 손에 꼽힐만한 숫자다. 애초에 놀이터가 많지도 않고, 그중 통합놀이터는 더 적으며, 그마저도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는 현실이다. 지방에 사는 장애 아동은 수도권-지방의 격차로부터의 차별과 어린이로서 놀 권리를 박탈을 동시에 경험함으로 중복적인 차별을 경험한다.
“시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불편한 시선을 보낸다면, 그 자리에 머물러 있기 어려울 것이다.” 18pg
공간이 장소가 될 때 그걸 장소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마음이 중요한 거니까.
(이때, 공간과 장소의 의미와 특징은 이-푸 투안의 것을 빌림.)
“놀이 공간에서 뛰어다닐 수 있는 여유 공간 시각적인 가이드, 인터페이스” 19pg
책의 뒷편의 인터뷰에 다시 나오는 의제이다. 충분한 공간을 확보하되, 놀이 기구 간의 간격은 조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장애인의 보조 기구가 공간을 많이 차지할 수 있으니까. (30pg) 그리고 보호자가 장애인과 기구를 사용할 때 조밀한 것이 이동 동선상 힘이 덜 드니까. 굳이 이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놀이터라는 공간을 계획할 때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다. 주방을 설계할 때 이동 동선을 고려해서 계획하듯이 아이들의 이동에도 이해와 고려가 필요하다.
“칠드런스 뮤지엄이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 박물관이나 키즈카페 같은 곳이 있어요. 미국의 공공 박물관으로 많은 곳에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곳을 자주 갔어요.”
놀이터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은 키즈카페와 유료 어린이 박물관이 채운다. 이런 놀이환경과 구조는 마치 어른들에게 공원과 벤치를 뻇고서는 카페에 가라는 요구와 같다. 어린이들이 경제적, 신체적, 문화적 요인으로 양극화되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의 사회적 관계망의 크기와 종류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를 최소화 해야한다.) 그래서 공적 공간의 필요성이 강화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놀있감도 정형화된 것과 아직 구조화되지 않은 것 사이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마다 창의력을 발현하는 포인트가 다르고, 그들의 놀잇감을 활용하는 능력치도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스노즐렌; 심리 안정실, 아이들이 안정될 수 있는 공간으로 약간 어두우면서 움직이는 화면이 있는 공간 36pg
“통합이나 유니버셜 디자인하면 뭔가 시각적으로 장애가 보여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41pg
장애인임을 강조하고 노출시키는 디자인은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배려와 양포가 필요함을 인지하는 것은 괜찮지만, 그 이상으로 동정을 산다거나 하는 디자인은 옳지 않다. 그렇다면 옳게 된 디자인의 예는 무엇인가?
“놀이터에는 시각화할 수 있는 건 기본적으로 많이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43pg
여기서 말하는 시각화는 직관적인 감각의 이야기일꺼다. 단순히 ‘시각’이라는 감각에만 맞춰진 것이 아니라. (비주얼 스케줄, 디스플레이보드 53pg)
“기어서 볼 수 있는 눈높이에 맞게도 뭐가 있으면 좋겠고요.”47pg
아이들의 키는 다양하고, 아이들의 행동도 다양하다. 마트에서 성인 눈높이에 비교적 못 미치는 곳들에는 어린이 손님을 위한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듯이 놀이터도 다양한 눈높이에 따른 콘텐츠가 있다면 훨씬 다양한 어린이들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콘텐츤는 어떤 것이고, 어떤 형태여야 하는가?
“자연 놀이터 같은 곳이 있으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놀아도 규칙을 어기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모습이 남달라 보이지도 않고요.” 48pg
다른 말로하면 아동에게는 장애의 유무를 떠나 자연처럼 포용적인 공간, 특히 놀이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적 참여도에 따른 놀이 발달 6단계(Mildred Parten)” 62pg
비참여 놀이> 단독 놀이> 구경꾼 놀이> 병행 놀이> 연합 놀이> 협동 놀이
“어떤 아이는 신나게 놀고 싶고, 어떤 아이는 가만히 쉬고 싶을 수 있죠.”67pg
→ 노는 것이 꼭 몸을 움직이는 행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의 놀이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들과 함께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거죠.” 73pg
→ 어린이가 놀이터의 주인이니까, 최근 공간의 트렌드가 바뀌는 게 보인다. ‘사용자’ 중심의 공간과 ‘사용자’가 의견을 제시하면 반영되는 공간들이 늘고 있다.
“어린이들이 주로 다니는 학교, 집, 이 사이의 공간들을 전부 놀이터가 되도록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76pg
→ 길에서도 놀이는 계속되어야 한다. ‘길’은 움직임을 실천하는 그저 지나치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길도 공간의 연속이니까, 충분히 장소로써 기능할 수 있다. 길 위에서도 아이들의 놀 권리가 보장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이고, 어떤 환경을 뜻하는가?
공간을 만드는 건 인권에 대한 문제
“생각하게 만드는 놀이터가 많은 것 같아요.”
“공간의 여지” 79pg
→ 아이들이 스토리를 고민하게 하는 공간들, 아이들의 주체성이 들어갈 여백
“위험을 인지하며 스스로 안전할 수 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예요. 인지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서는 미리 디자이너가 고려하여 설계해야 합니다.” 82pg
→ ‘어린이라는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정글짐을 오를 때 높아서 무섭지 않냐는 어른의 질문에 어린이는 ‘모래가 있어서 무섭지 않다고 대답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우리는 어른의 책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다.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위험만을 선택해서 부담할 수 있도록 하는 것.(디자이너의 역량이 중요해지는 순간)
“Happer’s Palyground” 85pg
-다양한 사람들이 우선은 한 공간에 함께 모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바 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사람과 사물 간의 교류가 아닌)
-좋은 디자인은 우리가 공간에 넣은 것이 아닌 그들 사이의 빈 곳에서 만들어진다.
-디자인에 자연을 담으려고 하죠.
“공원 내부뿐만 아니라 공원 외부를 포괄한 전체적인 환경 속에서 다양한 지원 체계가 있는지가 공원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다양성을 품은 놀이터는 포용력을 가진 아이를 기를 거예요.”89pg
→ 학교 다음으로 공적인 만남을 할 수 있는 기초 공간이니까. 어른들에게 공원과 벤치가 필요하듯, 아이들은 놀이터가 필요하다.
“Richard Dattner” 104pg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 스스로가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느낀점>

“공간을 만드는 건 인권에 대한 문제이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조경을 배우고, 도시를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듣기에 무겁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나는 살면서 장애 아동이 놀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통합놀이터를 방문해본 경험도 손에 꼽는다. 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 공간 사용자를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고, 기존에 사용하는 공간의 특성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디자이너에게나, 사용자에게나 전례 없는 비극일 것이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조명한 ‘모두를 위한 놀이’라는 주제를 보자마자 내가 이 매거진에 150번째로 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이런 사회적 통찰력을 가질 수 있지?’하면서 말이다.
도시에서 소외된 자들 중에서도, 장애인 중에서도, 장애 아동에게 초점을 맞춰본 적이 몇 번이나 될까.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친 생각은 내가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장애에 대해 좀 더 실증적이고,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껏 20년을 살면서 장애인을, 특히 장애 아동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수적으로 적긴 하지만, 못 볼 정도로 적은 수는 아니다. 이제부터라도 일상에서 그들을 자주 만나고, 함께 대화할 수 있도록 포용적인 공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다. 장소를 만드는 하나의 또 다른 주체로서 그들을 도시에서 지겹도록, 일상적으로 마주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늘 나를 새롭게 일깨우는 MSV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