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k is the new strong
사와다 도모히로 저. 김영현 옮김.
일본어로 ‘느슨하다;라는 뜻인 ‘유루이’와 ‘스포츠’를 결합해서 ‘유루스포츠’라고 이름을 지었다. 38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나비’와 ‘나방’을 한데 뭉뚱그려 ‘파피용papilon’ 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일본인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방’이 어깨에 앉아도 프랑스인은 “파피용이야! 예쁘다.”라며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렇구나, 이 세계는 말로 규정되는 곳이구나.’ 55
다수파라고 여겨지는 타깃을 ‘상정’하여 ‘그들’의 마음을 찌를 ‘듯한’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고객 설정이 유효한 때도 있었죠. 그렇지만 그건 ‘누구’일까요.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68
1.
광고업계(본업)에서 기른 능력을 광고업계(본업) 밖에서 활용하기
2.
대중(누군가)이 아니라 한 사람(당신)을 위해 일하기
3.
쓰고 버리는 패스트 아이디어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아이디어로 97
강자와 약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포츠를 생각해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규칙을 제안합니다. ‘여성이 득점하면 점수를 두 배 주자.’ 그렇지만 유루스포츠는 장애인이나 운동 약자를 ‘우대’하지 않습니다. 항상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을 설계합니다. 그래야 이겼을 때 더욱 기쁘니까요. 171
그렇지만 새로운 전제 조건을 만들어주면 기존의 규칙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사람도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생겨납니다. 저는 그런 사실을 알고는 ‘창작자’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했습니다.
이 사회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새로운 출발선을 긋는 것. 그것이야말로 ‘창작자’라고 불리는 우리의 일이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오늘날이 ‘허무의 정점’ 같은 시대이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장소에 출발선을 잔뜩 그려서 누구나 자신만의 경주를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174
방어핸드볼
기본적인 규칙은 핸드볼을 모방했지만, 선수들이 옆구리에 ‘방어 인형’을 끼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리고 득점하면 방어 인형이 ‘출세’하여 거대해집니다.
그리고 시합 종료 시점에 더욱 많은 방어를 ‘출세’ 시킨 팀이 승리합니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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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방어는 성장 단계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일본에서는 방어처럼 성장하면서 이름이 바뀌고 점점 가치가 높아지는 생선을 ‘출세어’라고 한다.
사토 씨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위해 한동안 계속 슈퍼마켓의 라면 코너에 서서 손님들을 관찰했다고 합니다. 이따금씩 “죄송합니다. 뭐 좀 여쭤봐도 될까요?라며 말을 걸어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무엇을 원해 그 상품을 골랐는지 인터뷰도 했고요. “고등학생인 아이가 늦게까지 공부하는데 기다리면서 야식으로 먹으려 한다.”든지 “혼자 자취를 하는데 간단하고 맛있어서 이걸 골랐어요.”라든지. 그처럼 살아있는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고요. 197
반복되는 루틴 소에 있으면 그 세계가 절대적인 것이 되게 마련입니다. 그러니 일단 루틴이 만든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혹은 자신과 하는 대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강제적으로, 인공적으로 말이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은 누구나 회유어처럼 정해진 경로를 끝없이 헤엄치게 됩니다. 210
“계속 통신업계에만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나한테 뭔가 쌓인 게 있을까 알 수 없었어. 그런데 다른 업계 사람이 5G에 대해 물어봐서 나한테는 별거 아닌 사실을 알려줬는데 엄청 고마워하더라.” 223
모두가 일에서 기른 능력을 지금보다 더욱 자신의 인생에 연결할 수 있다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쓴다며, 자신의 약한 부분이나 기피하는 것을 위해 더욱 시간을 쓸 수 있다면. 일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혁이 일어날 것입니다. 230
브라유 노이에 Braile Neue
‘당신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 있다.’ 294
‘저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습니다. ‘내가 업었던 세계와 있었던 세계가 서로 다르기를.’ 295
사와다 도모히로는 이 사회에 존재하는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하는 능력을 ‘사회적 시력’이라고 부른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시력’은 이른바 약점을 지닌 소수자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지금껏 우리 사회는 더 강해지길, 더 능숙해지길, 약점을 극복하길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은 극단적일 경우 이 사회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또는 사회에 의해 눈에 띄지 않는 구석으로 내몰렸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애초에 모든 사람이 강해지고 능숙해지고 약점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가 잘못된 전제로 사회를 운영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때가 아닐까.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약점을 지닌 소수자다. 모든 약점은 이 사회의 가능성이다.’ 이런 전제가 널리 공유될 때, 이 사회는 좀 더 숨 쉬기 편한 ‘느슨’한 곳이 될 것이다. 수많은 약점을 숨기고 외면하느라 지친 나는 진정 그런 사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