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혜 저.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잘 보이지 않는다. 차별은 차별로 인해 불이익을 입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7
과거에 주로 남성이 많던 직업군에 여성이 있으면 쉽게 가시화된다.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여성들이 잘 보이고, 그래서 그 수가 많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여성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도 있다. 여성이 ‘평균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은 추상적이라 잘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어떤 여성이 자신보다 더 좋은 조건에 있다는 사실은 구체적인 감각으로 경험된다. 23
이렇듯 사회적인 불평등과 개인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가 일치하지 않는 간극이 존재한다. 24
무언가 베풀 수 있는 자원을 가진 사람은 호의로서 일을 하고 싶다. 자신이 우위에 있는 권력관계를 흔들지 않으면서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런 호의성(시혜성) 자선사업이나 정책은 그저 선한 행동이 아니다. 내가 당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주고 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통제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는 일종의 권력행위이다. 만일 당신이 권리로서 무언가 요구한다면 선을 넘었다고 비난할 수 있는 권력까지 포함한다. 27
‘우리’와 ‘그들’이라는 감각의 차이는 두 집단을 가르는 경계에서 생긴다. 연구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다른 집단 즉 ‘그들’을 쉽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적으로 자신이 속한 내부 집단은 복잡하고 다양하고 더 인간적이라고 느낀다. 반면 외부 집단은 훨씬 단조롭고 균질하며 덜 인간적으로 보인다. 51
부정적 고정관념을 자극하면, 부정적 고정관념을 이겨내야 한다는 부담이 생기고, 부담 때문에 수행 능력이 낮아져서, 결국 고정관념대로 부정적인 결과가 나온다. 이런 압박 상황을 고정관념 압박이라고 한다. 67
누군가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농담에 웃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런 행동이 괜찮지 않다”는 메시지를 준다. 웃자고 하는 얘기에 죽자고 달려들어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야 할 때가. 99
‘능력주의의 역설’(Paradox of meritocracy) 브누아 모닌Benoit Monin과 데일 밀러 Dale Miller
사람들은 자신이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믿을 때 자기확신에 힘입어 더 편향되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112
한나 아렌트는 아고라에서의 정치적 평등이 사적 영역에서의 엄격한 위계와 지배를 전제로 했다고 말한다. 가장이 아고라에서 누리는 자유를 위해 사적 영역인 가정은 희생되어야 했다.`
공공의 공간에서 거절당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사람을 소수자로 만드는 중요한 성질 가운데 하나다. ‘소수’라는 건 수의 많고 적음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여성처럼 숫자로는 많아도 어쩐지 공공의 장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137
청소년이 거리에 서 있는 건 낯설다. 청소년은 가정이나 학교에 있어야지, 공공의 공간에는 자리가 없다. 하물며 공공의 공간에서 담배를 피우는 등 성인과 똑같은 행동을 한다면, 그 자체가 그 거리를 지배하는 질서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여겨진다. 138
→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단속하고 있는걸까. 또 각자의 공간 안에 있기를 바라면서 개개인을 얼마나 고립시켜왔던 걸까. 며칠 전 하자 센터에서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건물 곳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999클럽이라는 방이었는데, 그 곳은 과거 인천 콜라텍에서 화재 피해를 입었던 청소년들을 기리면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고 한다. 거리에서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채울 수 없던 욕망과 즐거움을 콜라텍만이 해소시켜 줄 수 있었기에 아마 그들은 타인이 지정한 장소를 배회하기 보단, 일탈을 선택했겠지. 여전히 우리에게는, 청소년에게는 거리가 허락되지 않는다. 하자를 통해 나는, 또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를 반길 수 있을까.
실제로 우리는 꽤 자주 누군가에게 경고를 보내기 위해 거리에서 시선을 사용한다.
즉 거리는 중립적인 공간인 듯 보이지만 그 공간을 지배하는 권력이 존재한다. 익명의 다수가 시선으로써, 말이나 행위로써, 혹은 직업적인 방해나 법적 수단을 통해 그 거리에 어울리지 않는 불온한 존재들을 단속하는 데 동참한다. 139
무수한 차별이 싫다는 감정에서 나오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주류 집단이 누군가를 싫다고 지목함으로써 ‘낯선 것’을 솎아내는 판옵틱한 감시 체제가 작동을 시작하고 공공의 공간을 통치한다. 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