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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길

_시설사회를 멈추다. 집으로 가는, 가깝고도 먼 길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X 인권기록센터 사이 기획, 기록(2020)

여는 글

“시설에 나와서 탈시설 권리를 요구한다고요? 그, 그, 그러니까, 집에, 아니, 시설에 안 돌아간다고요? 컨셉이……. 장산곶매인가요? 싸움에 나설 때 자기 둥지를 부순다는 그 전설의 매……?” 34쪽
“나는 ‘능력 있고’ 돈 있는 사람이 돈을 주고 집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그 논리대로라면 ‘능력 없고’ 그래서 돈도 없는 이들이 집을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했다. 그건 바로 장애인이었다. 나의 생각이 장애인을 시설에 가두고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36쪽
능력 없음과 장애가 동의어가 될 때, Ablism의 세계가 펼쳐진다. 비장애중심주의,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아주 당연한 세상일지 모른다는 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들과 함께 싸우면서도 그들이 가리킨 미래가 실현될 것을 믿지는 않았다. 믿기지 않는 말들이었다. 수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묶여 살고 맞아 죽어도 눈 하나 깜짝 않는 세상이었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말을 진지하게 자꾸 반복하는 그들을 믿었다. 그런 이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믿어지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나는 경험적으로 알았다.” 36쪽
“2009년 여름, 시설을 박차고 나왔던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바깥의 활동가들이 준비했던 것은 침낭과 천막,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은 피켓, 그리고 구호가 쓰인 커다란 현수막이었다. 2021년 마지막으로 그 시설을 빠져나오는 이들을 위해 지역사회 활동가들이 준비한 것은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주택, 그리고 각자의 이름이 새겨진 작고 아름다운 문패였다. 200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1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38쪽

[임직원이 말하다]

하나의 시설이 사라지기까지(김정하)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에게 이동권이나 활동지원서비스는 본인의 삶과 직결되는 권리이지만 시설 문제는 ‘다른 영토’에서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활동가들이야 탈시설이라는 이념에 동의할 수 있겠지만 장애 대중들이 과연 이것을 자기의 싸움으로 여겨줄까 걱정됐어요. 그런데 여기도 또 의리의 조직이더라고요. ~ 시설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계셨죠. 제가 비장애인이라 잘 몰랐을 뿐 웬만한 장애인은 기도원이든 특수 학교 기숙사든 한번쯤 시설에 살아본 경험이 있었어요. 그렇지 않더라도 수십 녀간 방안에 같혀 사셨으니까 격리되고 배제되는 삶이 무엇인지 저보다 잘 알고 계셨어요. 시설이 장애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가장 노골적인 표현이라는 것도요.” 66~67쪽
“직원들에게 시설은 일터니까 좀 더 민주적이고 일할 만한 조직이면 충분했던 거예요. 하지만 거주인에게 그곳은 삶터였죠.” 69쪽
(사이토 겐조의 일화) “젊은 시설 학생운동을 했던 비장애인이었는데 장애인시설에 갔다가 그 열악한 환경을 보고 너무 분노했다고 했죠. 그리고 다음 날 리어카를 그 시설에 다시 가서는 장애인 네 명을 태우고 그냥 나와버렸대요.” 74쪽
“그들의 인생을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얼마만큼 동의해야 충분한지 알 수 없는 그런 모호한 논의로 붙들고 있는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생각해요.” 87쪽
“욕구가 생기고 뭔가 선택하는 것 자체가 큰 변화죠.” 97쪽
“누군가의 삶이 바뀌고 있다는 걸 제 눈으로 직접 볼 때가 너무 좋아요.” 98쪽
“우리 사회는 장애나 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을 격리, 배제해왔어요. 아주 오랫동안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시설에 수용한 거죠. ~ ‘시설에서 발달장애인이 처해 있는 생활여건은 인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어요.” 99쪽
여기서 궁금해진 것은 상대적으로 개발도상국인 나라의 장애인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였다. 그들의 국가에도 시설이 있을까? 탈시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그들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탈시설 정책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장애인이 시설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는 것 뿐 아니라, 시설 문화에서 벗어나 자기 삶에 대한 권한을 되찾은 거예요.” 100쪽
→ (우리 정부는 시설을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소규모로 쪼개고 ‘전문화’라는 이름으로 최중증장애인을 격리하는 시설은 여전히 남겨두겠다고 해요. 100쪽에서 발췌)

실패한 자립은 없다(강민정)

“요구를 해도 반영이 안되니까 수동적이 되는 거죠. 주어진 것에 익숙해지도록 사람을 바꿔놓는게 시설 시스템이에요.” 105쪽
구조적 폭력이 한 개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상상 이상으로 깊다는 것을 느낀다.
“근데 그게 딱히 두렵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잘리기밖에 더 하겠어? 정의를 위해서 달리겠다는 마음까진 아니지만 이게 옳은 거 아니냐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 그래도 잘리면 안 되는데……하하.” 107쪽
멋있다. 나도 이런 사람의 마음을 닮고 싶어. 언제까지나 내 목소리를 내는 게 두렵지 않으면 좋겠다. 옳다고 생각한 일에 크고 바른 목소리를 내고 싶다.
“활동가들을 시설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시설에서 장앵니을 지원하는 역할은 하다보니 탈시설이나 시설 폐지가 현실적으로 가장 적절한 단어라고 해도 그 말이 뭔가 상처가 되긴 해요.” 그래서 향유의 집에서는 ‘주거변환’이라는 단어를 쓰기도 했어요.” 115쪽
‘탈시설’이라는 단어는 포용적인가? 포용적이라 하더라도 사용자가 불편해한다면 조금은 바뀔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어떤 단어가 탈시설을 대체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시설 나가서 지원주택에서 사는 분을 봤는데 시설에서 봤던 모습보다 사람이 커져 있더라.” 117쪽
저도 거주인 자립지원을 하면서 알게 된 거예요. 환경이 바뀌면 관계망이 변하고 활동 범위가 달라지고 삶이 변한다는 것을.” 122쪽
“어르신이 ‘내가 뭐 속된 말로 병신된 거 자랑할 일 있냐. 나가서 뭘 그렇게 돌아다니겠냐’면서도, ‘내가 외출을 몇 번 해봤는데 괜찮긴 하더라’ 그러시더라고요. 그런 생각까지 이를 수 있도록 이것저것 정보를 알려드리고, 시도해볼 수 있게 도와드리고, 이야기를 들어드리는게 우리가 하는 일이에요.” 124쪽
시니어를 이해하는 보조기구를 만들 때도 긍정적인 경험과 인식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꼭 탈시설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직원이 장애인을 알아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 같아요.” 124쪽
어쩌면 탈시설은 비장애중심적인 사회가 장애인과 장애를 알아가는 한 단계로서 의미가 가장 깊은 것일지도 모른다.
“시설을 나갔다가 돌아온 건 자립에 실패한 게 아니라 다시 시도할 수 있는 경험이 쌓인 거에요.” 125쪽
“하지만,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해서, 인력이 안 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설에서 살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 역시 폭력 아닌가요?”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아직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나가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장애인에게는 도전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거고요. 이런 시스템이 시설이거든요.” 127쪽
어차피 우리가 늙어 죽기 때문에 사회의 문제를 내던지지 않는 것처럼 장애인의 문제에서도 이건 변치 않는 사실이다. 그들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 당장의 문제이다. <어린이라는 세계>의 김소영의 말이 맴도는 순간이다.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기 때문에 소수자라기보다는 과도기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 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 그녀의 말이 맞다.
“탈시설 반대 세력이 주장하는 것 중 하나가 시설을 좋게 바꾸면 된다는 거거든요. 시설은 그냥 시설이지, 좋은 시설은 없어요.” 128쪽

탈시설 당사자가 보여준 길(정영미)

시설병(자기주장을 펼치기 어려워하거나, 무력감을 느끼는 등 오랜 시설생활에서 겪는 수동적 태도)이죠.” 169쪽
“이렇게 해도 문제고 저렇게 해도 문제라면서 딜레마에 대해서만 자꾸 얘기하고 변화를 시도하지 않으려고 하죠. 제 생각에 그건 딜레마가 아니라 인권 침해 상황일 때가 많아요. 장애인은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으로서 나와 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이에요.” 175쪽
“좋은 시설이 가능한다고 말하는 것은 탈시설해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이는 장애인의 삶을 가로막는 말이 될 수도 있다고.” 177쪽

탈시설이라는 시작점(박숙경)

“자립생활주택이 있는데 왜 지원주택이냐는 거였죠.” 187쪽
지원주택은 자립생활주택과 달리 계약 기간이 길고 (각각 2년과 6개월) 집을 본인 명의로 계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지원주택의 공급이 자립생활주택에 비해 공급되는 가구 수가 적고 지역 범위가 좁은 것 같다.
“어떤 형태로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그 소통의 의미가 정말 소중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어요.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건데 많은 사람들은 소통을 글씨로 올바로 쓰고 말을 똑바로 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요. 의사소통의 의미를 그런데에만 두니까 발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191쪽
“움직임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인데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건 억압이죠. 그 고통을 누군가가 알아보는 것에서 대화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가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함께하는 게 소통의 과정인 것 같아요.” 192쪽

시설 종사자의 탈시설을 그리며(정재원)

“모든 걸 보호라는 관점에서 접근했어요. 말로는 서비스 대상자와 인격 대 인격으로 만나는 방식과 방법을 나름대로 열심히 고민하고 실천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던 거죠. 지원주택은 그 시각부터 바꾸게 했어요. 관리하는 게 아니다. 지원한다. 지지한다. 동행한다.” 198쪽
“제 시각과 기준이 문제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들을 제 기준에 끼워 맞추려 하니 어려웠던 거죠.” 199쪽
“지원주택을 그냥 물리적인 주택 공급으로만 보는 시선이 여전해요. 지원주택은 단순한 주택 공급이 아니라 삶의 터를 만드는 일이에요.” 200쪽
지원주택을 기존의 시설을 평가하는 방식으로 평가할 수는 없어요. 성과 측정 기준과 방식이 바뀌어야 해요.” 201쪽
“지원주택도 대상을 나이나 신체적 특성으로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봐요. 여기는 장애인 지원주택, 저기는 노숙인 지원주택, 이게 아니라는 거에요.” 207쪽
나중에는 지원주택이 일반 아파트, 주택 등에 소셜믹스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으면 좋겠다. ‘Inclusive Mix’라는 개념이 등장하면 어떨까?
“어떤 위험이 있다면 그 위험을 방어할 수 있고, 피해갈 수 있게 같이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누군가 불편하다면 그걸 어떻게 해소하고 개선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사회 복지사들이 해야 할 일인 거죠. 사회복지사 혼자가 아니라 팀워크를 형성해 지원해야 하는 거예요.”
“종사자도 탈시설해야 돼요. 새로운 일에 걸맞은 직무 역량이 형성돼야죠.” 207쪽
“사람 중심 계획이라는 단어도 쓰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뭘 계획할 수 있겠어요. 타인의 삶에 대해, 계획은 당사자가 하는 거고 사회복지사는 그 설계를 지원하고 지지 해야 하는 거죠.”208쪽
그래도 우리가 여전히 ‘사람 중심 계획’을 논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머리와 손을 빌려줘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주인이 말하다]

나를 움직인 건 분노였어요(한규선)

“꿈도 미래도 없이 죽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그곳에서……” 216쪽
“만약에 이게 잘못되면 난 갈 데가 없으니까. 그때만 해도 나는 시설에서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사육당하면서 사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이래죽나 저래 죽나 마찬가지인데 한번 해보자.” 219쪽
“그런데 투쟁은 어떻게 했냐고요? 행복하게 살고 싶었거든요. 사람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투쟁을 하다 죽어도 좋으니 하루만이라도 사람답게 살고 싶었거든요. 그때 나를 움직인 건 분노였어요. 왜 난 이러고 살아야만 하나. 과연 이게 옳은 것인가.” 223쪽
“물론 시설을 벗어난 체험홈도 즐거웠지만 진정한 자립을 너무나도 원한 거죠.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 항상 그 생각뿐이었어요.” 225쪽
그래 무언가에 뜨인 눈은 다시 감기지 않는다.
“장애인이 자립하기 위한 사회의 기반시설이 아직은 제대로 갖춰 있지 않지만, 일단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걸 다 갖추고 나오라고 하면 아마 50년도 더 걸릴 거예요.”
“제가 시설에 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시설이 좋은 일을 하는 곳이라고 했거든요. 갈 데 없는 장애인들 돌보는 곳이라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에요.” 227쪽
무관심과 방조가 만들어낸 혐오와 소외

시설이 참 작고 초라해 보였어요(김동림)

“그 당시에 누나한테 전화가 왔어요. 네가 거기 뭐 하러 가있냐고, 빨리 시설로 돌아가라고 했어요. 나는 내 권리 찾으러 여기 있는 거고 다시 시설에 안 들어간다고 하니까 대뜸, 그럼 인연을 끊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연락 안 해요. 나한테 이제 가족은 여기 있는 노들야학 사람들, 발바닥행동사람들이에요.” 236쪽
“거기 들어가는 경사로가 있는데 그게 경사가 한 30도 정도로 낮아야 하는데, 45도 정도로 높아서 제가 올라가다가 바로 뒤로 자빠진 거에요. 그분들이 그걸 보고 기겁을 해가지고 바로 업체에 연락해서 경사로를 낮추라고 했어요. 그래서 다음 날 바로 낮춰졌죠.” 237쪽

자립생활에도 공동체가 필요해요(황인현)

“사람이 죽는 거 보고 나도 여기서 저렇게 죽겠구나 하고 생각했죠.” 248쪽
“장애인 활동가가 나보고 얌전하게 있지 말고 화를 내도 된다고 했어요. 그래서 들입다 박았어요. 그렇게 하니까 쾌감이 들었어요. ‘나도 항의할 수 있구나, 나도 정부에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항의할 수 있구나.’ ~ 집회 맨 앞에서 투쟁하다가 또 망가져서 고치고, 고쳐서 또 나가고 그랬어요.”
“시내를 나오면 서울가는 저상버스가 딱 한 대 있었어요.” 251쪽
“생활비가 생기니까 하고 싶은데 못 했던 걸 하게 되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면 돈을 써야 하니까 그런 자리를 못 갔었는데 이제는 사람 만나면 내가 커피도 사고 그래요. 활동을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255쪽
약간의 돈이 만든 생활의 활력과 관계들

시설과 탈시설, 반반의 마음이에요(양남연)

“죽어나가는 거는 팔자니까 보는 것도 만성이 돼요. 그런데 열받는 건 한 명이 죽어나가잖아요? 그러면 또 거주인 한 명이 들어와요. 빈자리는 계속 메꿔져요.” 277쪽

아무래도 거기 있을 때가 더 좋았지(이정자)

“나는 여기 죽으러 왔는데, 이게 없어진다니까 속상하지. 여기서 죽으려고 뭉개고 있다가 끄트머리에 이리니까. ~나가서 죽을까봐 그런 게 아니라 지금보다 사는 게 더 못해질까봐 그러지.” 299쪽
“아무래도 그 요양원에 있을 때가 좋았지. 거기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이야기도 하고 그러잖아. 여기는 사람 구경을 못 하니까 적적하지. 서로 왕래도 잘 못 하지.” 303쪽
여기서 중요한 건 시설의 구조나 공간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살 수 있는 관계망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다.
“사회 사람으로 인정을 안 하고 요양원에서 나왔다고 무시하는 느낌.” 307쪽
우리가 탈시설한 사람들을 편견으로 대한다며 결국 그들은 다시 새로운 ‘시설’에 갇힌 것과 다름이 없다.
“집만 준다고 되는 게 아니라 사람 사는 재미가 있어야지. 집만 크면 뭘 해. 문 닫아버리면 그냥 차단인데.”
“바깥에 사회 사람하고 만난다는 것도……아직까지 마음의 문이 안 열리지. 우리가 ‘멀쩡한 사람들’이랑 같이 살려고 나왔지만 그 축에 끼지도 못해. 벌써 보는 눈이 다른데. 나가면 자존심이 상하는 거지.” 308쪽

<느낀점>

편하게 적힌 문체를 따라 가보니 그 뒤에는 무거운 사회 문제와 이를 해결하고, 겪고, 뚫고 나가고, 체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만의 자세와 삶과 목소리와 방식으로 나에게 탈시설의 과정이 다가왔다. 그래서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지라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고, 하나 하나의 의미가 각별하게 다가왔다. 또 하나, 나의 심장을 건드렸던 것은 ‘시위’라는 것의 의미이다.
최근에 나는 시위라는 행위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시위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고, 덕분에 나의 정치적인 위치와 의견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국민의 기본 권리 중 하나가 시위를 할 권리라지만, 나는 그게 겁이 났다. 분명 그 현장에 함께 하긴 했는데, 나 혼자 이 행위에 대해 이해를 하고 싶었는지, 거대한 소명이 필요했는지 나는 자꾸만 숨고 싶어졌다. 그러다 이 책을 발견했다. 과장을 보태지 않아도 이 책은 투쟁의 역사가 쓰인 책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이 살고, 죽고,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지 고민을 하는 그런 복잡성도 함께 갖추었다. 그래서 이걸 정의하고 정리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버겁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깨달았다. 세상은 외치면 변한다는 사실을. 말이 안되는 사실들을 계속 외치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그들이 외치던 말도 안되는 세상에서 살게 된다는 사실을 필연적으로 알았다는 말이 늘 생각이 났다. 나에게 용기를 줘서 고맙다. 시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조금은 괜찮아졌다. 다시 도망칠지라도 언젠가 다시 나를 세워 돌아갈 수 있는 곳이 된 것 같다. 장애와 탈시설의 투쟁적인 역사가 나에게도 투지를 불어넣어주었기 때문일까. 나는 또 이 책이 낸 목소리가 필연적으로 바꿀 세상에서 살고 싶어졌다.
약간 술에 취해서 쓰는 글이라 내용이 뒤죽박죽이다. 그래도 또 이야기 할 것은 탈시설을 했다고 끝이 아니라는 것. 그들이 사는 모든 공간이 ‘시설’이 아닐 수 있도록 막아야 한다. 또한, 그들은 시설에서 독립한 거지 그들을 지탱하던 모든 관게에서 독립한 것이 아님을 마음으로, 머리로 알아야 한다. 시설, 번듯하게 차려진 비밀의 공간. 나조차도 고동학교에 탈시설 문제를 다룬 이후 충격을 먹었더랬다. 정녕 이 공간이 사람을 위해 지어진 거라고? 이 시스템 속에서 사람들이 살았다고? 근데 아무도 몰랐다고? 아직도 이 사실을 알게 된 날이 잊히지 않는다. 탈시설은 오래남았다. 나에게 말이다. 장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일하는 지금. 나는 탈시설에 대해 주목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그만큼 실증적인 문제라는 것을 느낀다.
탈시설 시위가 열리던 2008년에 나는 겨우 5살이었다. 아마 그들이 서울에서 시위를 하던 날에 나는 유치원에 다니고, 밥을 먹고, 놀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하니 내가 역사의 순간에 살았다는 점 하나, 그 기록이 오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점 하나. 그렇게 점 두 개가 찍혔다. 아니 점 인줄 알았는데 옆에서 보니까 긴 선이었다. 아직도 그어지고 있는. 그 선의 끝에 내가 연필을 함께 쥐고 그을 날이 올까? 그랬으면 좋겠다. 분명 삐뚤빼뚤한 선이겠지만, 말이다. 선 연습 많이 해야겠다. 언젠가 나에게 연필이 쥐어질 날에 내가 소신있게 그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