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03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호 ‘이동’을 소개하며
인생을 살아오면서 아마 다들 한 번쯤은 좋아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장기간 무언가를 아끼다 보면 대상이 품고 있는 가치가 돋보이기 때문일까, 한번 마음을 주면 오래 사랑을 하는 일명 ‘오사빠’인 나는 그런 충동을 자주 느낀다. 얼마나 자주냐고 물어본다면, 이미 내 주위 사람들은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에 대해 ‘귀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들었다’는 것을 예로 들어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는 영업(?)에 대해 감사하게도 모두가 반겨줬기 때문인지 자신감이 붙은 나는 덥석 MSV 소셜임팩트 메이커스의 기회를 물어버렸고, 결국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
MSV는 Magazine for Social Value와 Meet Social Value의 중의적인 의미를 지닌 브랜드로, 포용적인 디자인을 통해 세상의 이슈를 분석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목소리를 낸다. 그 방법 중 하나인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는 현재 창간호 ‘이동’을 시작으로 ‘직업’,‘놀이’,‘안전’까지 총 4권이 세상에 나와 있다. 이번에 소개하는 ‘이동’은 개인적으로 MSV라는 브랜드와 그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하게 된 계기이자, 지인들에게 가장 많은 공감을 산 책이었다. 때문에, MSV 소셜임팩트 메이커스로서 책을 소개하는 첫 번째 글에서 ‘이동’을 소개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이동’에서 찾은 인사이트
‘포용적인 이동이란 무엇인가?’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간단하고도 명료하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는 과정과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의 개념을 통해 다양한 이동 주체들이 현재 어떻게 생활하는지, 어떤 변화가, 어떻게 필요할 지를 실증적으로 짚어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통계 및 인터뷰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짧게나마 휠체어 사용자, 시각장애인, 임산부의 이동에 동행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한국 20대 비장애 여성으로서 쉽게 지나쳤던 ‘모두의 이동성에 대한 질문’을 곱씹을 수 있었다.
이동의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보통 이동은 물리적인 위치 상에 변화가 생기는 것으로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내려가면서, 이동은 ‘접근성’의 의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전자의 이동에서 강조되고 있다고 느낀 것은 안전과 시설 확충의 문제였고, 후자의 의미를 살린다면 그것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예를 들면, 시각 장애인이 안전하게 대중교통을 타고 미술관까지 가는 것은 전자의 이동이지만, 청각 혹은 촉각을 이용한 서비스를 통해 작품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후자의 의미가 좀 더 강하다는 것이다. 이동의 두 가지 의미가 적절히 공존하는 도시만이 모두의 자유로운 이동을 응원하고,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으면서 ‘사람은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이동한다.’라는 문장 앞에 언제든지 다양한 수식어가 붙을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나이가 많고 적은, 휠체어와 함께하는, 장애가 있는, 무거운 짐을 든, 새 생명을 품은 등의 수식어 말이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지 그 문장이 머지 않은 날에 우리 사회에서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자,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호 ‘이동’ 56~57pg.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
앞선 단락이 ‘이동’을 읽으며 전반적으로 느끼고 배운 것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책이 나에게 남긴 것을 문장별로 정리하여 조금 더 세부적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호인 ‘이동’에서 밑줄을 그었던 수많은 문장 중 세 개와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적어봤다.
“사회에서 약자로 분류되는 사용자들을 고려하여 제품과 공간 그리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보편적인 대다수에게도 혜택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pg
나는 160pg에 달하는 이 책 중에서 이 문장을 제일 좋아한다. 다른 훌륭한 문장들이 많지만, 이 문장이야 말로 MSV가, ‘이동’이 담고 싶은 가치를 명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동’ 호의 관점에서 풀이한다면, 저상버스는 휠체어 이용자뿐만 아니라, 노인과 어린이, 무거운 짐을 든 사람 등 모두에게 좀 더 편리한 이동 경험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려와 생각이 자신이 쥐고 있는 ‘특권’의 약화로 이어진다고 오해하는 경우를 목격한다. 그럴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동시에,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가치가 사회 전반적으로 이해되는 날을 기대하게 된다. 사회적 약자의 경험은 무시되거나 묻힐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경험에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이 문장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중증 장애인들, 특히 혼자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장애인들은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대책이 없어요. 화재가 발생하면 엘리베이터도 작동이 멈추잖아요?” 21pg
처음 이 문장을 읽던 순간이 생각난다. 왜 그걸 기억하고 있나 하면,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듯이 “헉” 소리가 났기 때문이었다. 20년 동안 수 차례의 소방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화재 발생 시 엘리베이터는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편, 중증 장애인이나 노인, 혹은 행동 대응이 느릴 수 있는 다른 주체들이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중증 장애인이 화재 상황에서 어떻게 대피하지?’라는 질문을 한 적이 없었다.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번 부끄러움을 느끼고 나니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거나, 겪지 못했던 다른 이동 주체들의 경험에 점차 관심을 갖게 되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이 인터뷰 한 문장은 편협한 나의 사고를 깊고 다양한 경험의 세상으로 이끌었다.
“도시는 남녀노소,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며, 다양성을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가 보행이 가능하고 시각이나 청각에 불편함이 없는 이의 신체에 맞춰 개발되어 왔다.“ 134pg
최근 읽고 있는 킴 닐슨의 <장애의 역사>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차별은 공기와 같아 기득권에게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 살아간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동’을 다시 읽으면서 두 문장에 강력한 연관이 있음을 발견했다. 우리 사회는 불평등과 소외가 고착화된 상태라 비뚤어진 모습이 아주 당연한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또 주목했던 것은 내가 스스로 ‘한국의 20대 비장애인 여성’으로서 누리고 있는 특권을 체화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기 때문에 ‘중증 장애인의 비상 대피’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도 둔감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어쩌면 이 문제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딜레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이해하고 체화된 특권과 싸워야 하는 것이 디자이너로서, 한 도시의 주체로서의 소명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글을 마치며
MSV의 ‘이동’은 주목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스쳐갈 수 있는 일상을 되돌아 볼 수 있도록 하면서, 놓치고 있던 경험과 사회문제를 깊게 들여다 보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덕분에 지극히 당연한 이동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현실일 수 있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도시가 그다지 포용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에게 책을 읽는 과정은 놀라움과 무지에서 온 부끄러움의 연속이었지만, 덕분에 인클루시브 디자인의 가치와 방향성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MSV가 사회적으로 불편이 일상화된 주체들에 대해 연민이나 도덕성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잘 서술된 책이라는 사실이다. 도시사회학자 소준철의 말을 빌리면, ‘동정과 시혜보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변화를 요구’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주목이 모두를 위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방향성을 명확히 제시해 주었다. 덕분에 MSV가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에 깊이 매료되었고, 나 또한 앞으로 이런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글을 마무리 하면서 당신에게도 MSV가 오랜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기를 조심스레 바래본다.
MSV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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