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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어

정세랑(2021), 위즈덤 하우스

<밑줄 그은 문장들>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교육을 받고 비슷한 공동체에 속하면 비슷해진다. 그런 패턴을 확인할 때 스스로가 작아지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내가 했던 고민을 먼저 한 사람이 있고, 내가 했던 고민을 다시 시작할 사람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면 가벼워지는 것이다.
-28쪽
조심스럽게 다음 발짝을 확인하고 내딛는 성격이고 크게 바뀌지 않겠지만, 그래도 가끔 어떤 무모함을 열망할 때가 있다. 갑자기 여행을 시작했던 그해가, 활동 영역을 바꿔보겠다고 마음먹었던 여러 순간들이 나에겐 다이빙이었다. 다이빙에 가장 가까운 행위였다. 나무 발판을 겁내며 건너던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114쪽
왜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불안정한 경로를 굳이 선택한 걸까, 선택하면서도 명확하지 않았던 동기를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나의 최대 가능성을 원해.”
-123쪽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사람인 어슐러 르 권은 ‘안다’고 말해야 할 자리에 ‘믿는다’는 말이 끼어드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고, 이에 깊이 동의한다. 과학의 자리에 과학이 아닌 것이 들어와서는 곤란하다.
-164쪽
한 사회는 죽고 없는 사람들의 죄를 어디까지 질 수 있을까? ~ 명쾌하지 않고 어려운 감정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라도 가볼 만한 나라였다.
어떤 지명을 알게 되고 특별하게 생각하게 되면 감수해야 할 것들이 는다.
사랑하는 것이 많은 나는, 특히 공간과 장소에 더 마음이 후하다. 이 덕분인지 때문일지 나는 세계시민이 되었다. 특별히 더 마음 아프고 반가운 순간들이 생긴다는 것은 황홀하면서도 무거운 일인 듯 하다. 아마 현장에 나가 있는 수 많은 ‘어른’들의 마음에 비할 바가 있겠냐 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나의 은사, 당신에게서 배운 것처럼 세상은 넓게 사는 것이니까.
-202쪽
세상이 망가지는 속도가 무서워도, 고치려는 사람들 역시 쉬지 않는다는 걸 잊지 않으려 한다. 절망이 언제나 가장 쉬운 감정인 듯싶어, 책임감 있는 성인에게 어울리진 않는다고 판단했다.
-254쪽
그런 역사를 그렇게 커다랗게 남겨놓는 것은 대단한 신념이지 않을까 한다. 부끄러운 역사일수록 지우고 싶었을 텐데, 남겨놓는 시늉만 하고 싶었을 텐데, 그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다.
-258쪽
나는 베를린에서 그 곳이 기억하는 도시임을 확인했다. 공간의 기억은 강력하고도 직관적이여서 많은 영향력을 주지만, 동시에 담은 기억이 부정적일수록 더 작고 연약한 형태의 기억만을 품게 된다. 하지만, 독일은 특이하게도 그 힘을 온전히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데, 또 피해자들의 현재를 알리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세랑의 말처럼 그 방향으로는 가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했다.
걷다 보면 거리에 녹아들 수 있는 도시가 도시 꼭 태어난 도시는 아닐 수도 있고 그런 경우 그곳을 찾기 위해 떠나봐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290쪽

<감상평>

환경문제와 관련된 책일까 싶어, 책을 들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때부터 내 모든 하루들이 정세랑을 향하기 시작했으니. 나는 많은 국가를 가보진 못했지만 사랑하는 도시와 장소가 많은 사람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내 도시들의 이야기과 새로운 도시들에게, 그들의 안부를 물을 수 있게 되어 책을 읽는 내내 행복했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작가가 보고 듣고 겪었던 이야기들을 놀랍도록 잘 엮은 작품이었다. 읽을 때마다 정세랑의 글에서는 흑연심의 냄새와 세계에 대한 사랑이 묻어 났다. 혼란하고 고된 사회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전히 서로의 안위를 확인하고 사랑하고 아낄 수 있음을 충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멋지고도 굳센 어른이라 생각했다.
책의 가장 초반에 그녀가 여행을 하도록 등 떠 밀어준 L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세랑과 L의 이야기가 나와 G의 것과 닮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등 떠 밀어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사랑토록 하는 것. 용기를 북돋아 일명 ‘원래라면 하지 않았을 일들’을 하도록 하는 것. 00만큼 00을 사랑할 순 없어- 이 긴 여정의 시작은 어디일까. 나는 그 답이 나와 내 장소들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려주고 싶다. 결국 내 장소가 끊임없이 많아져서 전세계를 장소화하게 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정말 지구인만큼 지구를 사랑할 순 없게 될테니. 사랑에게 몇 번을 데였지만 그녀의 글에 또 한 번 사랑에게 몸과 마음을 맡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