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2.15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3호 ‘놀이’를 소개하며
드라마<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팬이라면 작품 속 구교환 배우가 학원으로부터 어린이들의 해방을 외치며 ‘놀 권리’를 주장하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장면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어린이들이 노는 모습을 상상해봐도 좋다. 모래가 깔린 놀이터에서 정글짐에 오르고, 그네를 타고, 술래잡기를 하는 모습, 이 모습이 내가 생각하는 ‘놀이하는 어린이’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 어디에서도 장애 아동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놀이라는 것은 수 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행위인데도, 왜 나는 놀이가 아이들이 두 다리로 뛰고, 손과 팔로 무언가를 잡고, 귀와 눈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을까?
‘새들이 날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아이들은 놀이를 한다.’ 이 말에서 찾아볼 수 있듯 노는 것은 어린이에게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어린이는 놀이를 통해 신체적, 사회적, 정서적 발달을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규칙을 익히는 동시에, 자신을 표현하고, 숨 쉰다. 그렇다면 장애 아동은? 아동의 앞에 장애라는 수식어가 붙었다고 해서 그 주체가 자유롭게 놀지 못할 이유는 없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중 오늘 소개할 ‘놀이’ 호는 장애 아동의 놀 권리를 이해하고 모든 어린이들의 주체적인 놀이에 대해 고민하는 책이다. 너무 오래 장애 아동의 놀이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지 주변의 놀이터와 아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책이기도 했다.
‘모두를 위한 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누가 할 수 있을까? ‘놀이’호는 그 답을 장애 아동의 부모님, 놀이 연구 기관의 책임자와 놀이터 디자이너에게서, 그리고 국내외 놀이터와 박물관에서 찾았다. (다만 놀이터의 주 사용자는 ‘어린이’인데, 어린이의 의견이 간접적으로 담긴 점은 조금 아쉬웠다.)덕분에 놀이와 그 환경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방향성, 입장을 들으며 실증적인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비가시적인 주체를 드러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이 책의 끝이 ‘모두를 향해 있다’는 점에서 잘 쓰인 책이라 생각한다.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3호 ‘놀이’의 모습.
‘놀이’호의 목차와 구성.
이 책은 모두에게 중요한 놀이, 놀이를 위한 디자인, 포용력 있는 디자인 총 3개의 주제로 진행된다. 인터뷰 10개와 유의미한 통계와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MSV ‘놀이’호에 등장하고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재현님의 손글씨.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
앞선 단락이 임팩트 시리즈 중 3호인 ‘놀이’ 읽으며 전반적으로 느끼고 배운 것이었다면 여기서부터는 책이 나에게 남긴 것을 문장 별로 정리하여 조금 더 세부적으로 공유하고자 한다. 책을 읽으며 밑줄을 그었던 수많은 문장 중 세 개와 이에 대한 나의 생각을 짧게 적어봤다.
“장애 아동들을 위해 특별한 놀이터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7pg
이 질문은 책의 ‘Editors Letter’의 첫머리에 나온다. 글쓴이가 책을 집필하고 다듬으면서 바뀐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사실 나 또한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소외를 경험했던 사람들이 권리를 이제부터라도 보장받기 위해서는 ‘그들만의 특별한 공간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말이다. 핵심을 놓치고 있었다. 결국 소외를 경험했던 주체들도 ‘함께’ 사회를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사람들이다. 통합이 아니라, 다시 분리하는 방법을 고민했다는 점에서 부끄러웠다.
하지만, ‘특별한 놀이터’가 필요 없다는 것이 특별한 노력과 연구, 그리고 이해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문제를 겪는 대상 자체, 그들의 경험, 또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노력에 대해서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장애 아동을 위한 특별한 솔루션’보다 ‘장애’, ‘놀이’, 그리고 ‘어린이’에 대한 이해가 좀 더 필요함을 깨닫게 해주었다.
“칠드런스 뮤지엄이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어린이 박물관이나 키즈카페 같은 곳이 있어요. 미국의 공공 박물관으로 많은 곳에서 운영되고 있었는데 그곳을 자주 갔어요.” 22pg
한국의 경우 놀이터가 채울 수 없는 부분은 키즈 카페와 유료 어린이 시설이 채운다. 이 시설들을 통해 어린이들이 공공 놀이터보다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면도 확실하다. 한국의 통합 놀이터 상황은 마치 어른들에게 공원과 벤치를 빼앗고서는 카페에 가라는 요구보다 더 부당하다. 어린이들이 부모의 경제적 상황이나 신체 및 문화적 요인으로 양극화되는 현상을 최대한 공공 놀이 시설이 막아줬으면 한다. 위 사례의 칠드런스 뮤지엄처럼 말이다. 이를 위해 예산 확충, 기존의 시설 관리, 그리고 놀이 자원의 재활용에 대한 변화는 빼놓을 수 없다.
“위험을 인지하며 스스로 안전할 수 있게 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거예요. 인지할 수 없는 위험에 대해서는 미리 디자이너가 고려하여 설계해야 합니다.” 82pg
도서 <어린이라는 세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저자는 한 어린이에게 ‘정글짐을 오를 때 높아서 무섭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어린이는 ‘모래가 있어서 무섭지 않다’고 답한다. 이 짧은 대화와 밑줄 그은 문장을 통해 나는 어른의 책임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할 수 있었다. 아이의 놀이를 응원할 수 있는 디자인은 무엇일까? 조심스럽게 그 답이 아이를 지나치게 보호하려 들지 않으면서도,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위험만 부담할 수 있게 하는 ‘균형’에 있다고 생각했다. 위 문장을 통해 놀이터 모래의 철학과 의미를 엿본 기분이었다.
Play For All 전시의 한 장면.
글을 마치며
작년 여름, 서울숲에 자주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서울숲에서 진행하는 어린이 조경학교의 보조교사로 일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숲 속 놀이터’와 ‘상상 거인의 나라 놀이터’ 앞에는 ‘통합 놀이터’의 정의가 적혀있었는데, 그걸 볼 때마다 굉장히 반가웠다. 수업 회의나 준비를 마치고 일찍 해산을 할 때면 놀이터 한편에 멀찍이 서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걸 봤다. 책에서만 봤던 2인용 그네와 휠체어, 진입 가능한 미끄럼틀과 회전 무대가 쉴세 없이 아이들과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서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는데, 욕심인듯하여 대신 눈에 오래 담고 왔다. 놀이터를 보고 온 날이면 MSV 소셜임팩트 ‘놀이’를 슬며시 펴본 생각이 난다.
“공간을 만드는 건 인권에 대한 문제이다” 책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조경을 배우고, 도시를 애정하는 사람으로서 듣기에 무겁지만,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이쯤에서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살면서 장애 아동이 놀이하는 모습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앞선 서울숲의 경험을 포함한다고 해도 통합 놀이터를 방문해본 것도 손에 꼽는다. 하지만, 공간을 다루는 사람이 공간 사용자를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고, 기존에 사용하는 공간의 특성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것은 디자이너에게나, 사용자에게나 전례 없는 비극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렇기에 이 책이 ‘모두를 위한 놀이’를 심도있게 조명했다는 사실은 나에게 정말 소중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 수록 강하게 드는 생각은 스스로가 공간 사용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에 대해 좀 더 실증적이고, 전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또, 장애 아동이기 전에 그들이 놀이에 목마른 또 하나의 어린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도시 공간에서 장소를 만드는 하나의 또 다른 주체로서 어린이 모두의 놀이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MSV #MSV소셜임팩트시리즈 #소셜임팩트 #인클루시브디자인 #놀이 #Play #PlayforA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