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의 역사

킴 닐슨(김승섭 옮김), 동아시아(2020)
<장애의 역사> 책 표지

<밑줄 그은 문장과 생각들>

[옮긴이의 말]

‘능력 있는 몸에 대한 규정은 오늘날 비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렇게 “능력 있는 몸”은 정치, 경제 , 법 , 문화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에서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고, 그 불평등은 인간의 몸에 다시 질병과 상처를 남겼다.’ 11pg
“문제는 ‘눈으로 역사를 바라보고’와 같은 표현이었다. 그것은 맹인이 배제된 비장애중심주의적 표현이었다.” 12pg
MSV 언어 스터디를 하면서 내가 맞닥드리는 어려움 그 자체다.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모든 언어와 표현들이 다른 누군가를 ‘의도치 않게 배제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장애에 대해 이해하는 건 이런거구나, 부끄럽지만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거구나 이런 생각이 든다.
‘차별은 공기와 같아 기득권에게는 아무리 눈을 크게 떠도 보이지 않지만, 권리를 박탈당한 사람들은 삶의 모든 순간을 차별과 함께 살아간다.’ 14pg
평생 경험했던 일상에서 차별을 발견하는 것과 평생 모르던 경험에서 차별을 느끼는 것은 어렵지만 필요한 일이다.

[들어가며]

“미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의 구성원인 시민들이 유능하다는 가정 위에서 건립되었다.~ 독립은 좋은 것이고 의존은 나쁜 것이 된다. 의존은 타인에게 기대는 연약함을 의미할 뿐이다.” 20pg
한국 사회에서도 장애가 연약함, 의존과 같은 단어와 동의어로 사용되곤 했다. 장애인들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인식 말이다. 폐품 수집 노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가난의 문법>에서도 이런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장애는 정의하기 어렵다. ~ 어떤 몸이 장애가 있다고 분류하는 것은 젠더, 인종, 성적 지향, 교육 수준, 산업화와 표준화의 수준,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지 여부나 보조 장비에 접근 가능한지 여부, 계급 같은 요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 22~23pg
이 책에서는 장애를 다양한 사회적 맥락과 역사적 상황 등에 기반하여 정의한다. 이를 통해 현대 사회가 장애를 ‘명확한 원인이 있는 치료 받아야 할 문제’(장애를 의료적 문제로 정의하는 사회적 풍토)로 파악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장애에 대한 정의는 늘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함께 이루어졌으며, 소외 및 불평등의 대상의 역사와 융합되어 흘러왔음을 볼 수 있다.
“나는 그렇게 특권을 체화하고 있었다. 장애의 역사를 현명하게 연구하기 위해서는 역사 기록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것과 함께 내가 가진 특권을 인정하고 그것과 씨름하는 일을 계속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실수를 했고 많이 배웠다.” 32pg
MSV 소셜임팩트 시리즈 1호 ‘이동’을 리뷰할 때 이 문구를 인용하며 생각을 짧게 적었다. 내가 한국의 비장애인 20대 여성으로서 특권을 체화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었고, 이 특권의 체화가 소외와 불평등을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특권과 씨름하는 것은 어렵지만 나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다. 앞으로 많이 실수를 하겠지, 또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칠 수 있겠지 하면서도, 용기가 난다. 나는 지금 나의 특권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 그리고 난, 그게 왠지 장애와 도시에 관련된 것일 것 같다.

[1장: 영혼은 자신이 머무를 몸을 선택한다]

북아메리카의 토착민들, 1492년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에서는 모든 사람과 사물이 재능(기술, 능력, 목적)을 가지고 있다. 개인, 공동체, 세계가 조화롭다면, 사람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재능을 찾고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의 재능을 타인과 나누고 타인의 재능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40pg
“역설적이게도 북아메리카 토착민 사회에서 장애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토착민 공동체는 오늘날 ‘장애’에 해당하는 단어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41pg
“오늘날 미국의 지배적인 문화와 달리, 토착민의 세계관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있고 신체적 노화가 능력의 감소로 이어지지 않았다.” 50pg
노화는 종종 신체적 능력의 감소로 이어진다. 하지만, 토착민의 사회적 맥락에서는 노인의 몸과 마음의 변화가 현대 대부분의 사회에서 해석되는 것만큼 부정적이지 않았다. 이 말은 토착민의 사회가 장애에도 별다른 차별이나 소외를 두지 않았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장애의 역사를 이해하면, 노인, 아이, 성소수자, 여성이 겪었던 사회의 불평등을 따라갈 수 있다.

[2장: 가난한, 사악한, 그리고 병약한 사람들]

식민지 공동체, 1492~1700
“자본주의가 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한 17세기, 장애를 정의하는 일차적 기준은 노동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였다.” 67pg
“유럽인들은 그 사람이 노동할 수 있다면, 신체적 비정상성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77pg

[3장: 가여운 이들이 바다로 던져졌다]

후기 식민지 시기, 1700~1776
“많은 마을들이 재정적 부담을 피하고자 그곳 주민이 아닌 스스로를 부양하지 못하는 극빈자들을 신체적, 언어적으로 위협하며 쫓아냈다.” 87pg
→ 극빈자 장애인들을 대하는 태도가 상류층 장애인들을 대하는 모습과는 대조된다.(스스로 장애인 가족 구성원을 부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사회에서 장애란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었다). 이 당시에는 장애인의 부양이 공동체의 몫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에 심한 경제적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장애를 꺼려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와의 차이를 살필 수 있다.
“레즈번은 정신질환자 수용소 대신 지역 공동체로부터 세금 면제만을 받으며 자신의 집에 머물렀다.” 92pg
여기서 꽤 놀라운 사실은 우리의 사회가 오래전부터 탈시설을 개념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세금 감면이라는 방법을 통해 장애인이 사회와 시설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공동체적 지원과 의지가 가능했다는 점을 살필 수 있다.
“구호소는 경제적으로 스스로를 부양할 수 없는 사람들을 내버리는 곳이었고, 종종 교도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94pg
“국가는 모든 사람을 모범적인 시민으로 바꾸려 했고, 그렇나 변화가 불가능하거나 그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시설에 가두려 했다.” 116pg
강제적인 수용시설에 ‘구호’나 ‘복지’라니. ‘형제복지원’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은 역사다. 미국에서 1840년대에 일어났던 일들이 1975년에서 1987년 사이에 한국에서 일어났다. 장애의 역사가 돌고 돈다는 사실에 마음이 불편하다.
“노예제의 근간을 이루는 인종차별 이념에 따르면, 북아메리카로 온 아프리카인은 그 자체로 장애인이었다. ~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열등하게 태어났고 그들의 몸이 비정상적이고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102pg
“장애는 노예제의 이념, 경험, 실행에 있어 다양하고 심오하게 스며들었다.” 103pg
장애가 결핍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다른 불평등과 소외 주체와 흐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성소수자, 인종, 나이듦은 각각 성적 장애, 열등한 혈통, 그리고 신체와 정신의 노화(악화)라는 의미에서 장애로 해석되고 있다. 고로, 장애는 생각 이상으로 혐오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나이, 키, 병력, 팔과 다리의 상태로 인해 납치되거나 노예로 팔려 갈 위험은 없었다. ~어린이뿐 아니라 나이 든 남성과 여성은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졌고 종종 학살당했다.”
“한편, 몸이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몸을 전시해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높게 평가받았다.” 104pg
사람의 생명을 상업적으로만 판단했을 때 내릴 수 있는 가장 추악한 판단이다. 놀라웠던 사실은 아직도 현대 사회에 사람을 능력과 경제적 가치로 판단하는 구시대적인 가치관이 남아있다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 언급되는 모든 주체들은 현대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다.

[4장: 비정상인 자와 의존하는 자]

시민의 탄생, 1776~1865
“당시 백인 여성의 몸과 정신은 [남성에 비해] 결핍되어 있다고 여겨졌고, 그러한 인식은 백인 여성을 특정 노동에서 배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124pg
“장애의 정의가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의 부재였음을 감안할 때, 백인 여성, 자유인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노예는 장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다.”
“노예제와 인종주의는 북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아프리카인과 그들의 후손이 공동체와 시민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지능과 능력, 그리고 심지어는 인간성의 측면에서도 백인과 동등하지 않다는 이념을 전제하고 있었다.” 125pg
혹여 흑인과 노예들 중에 자신이 사회적으로 비장애적임을 입증하고자 노력했을지라도, 대다수의 그들은 목소리가 수렴되는 주류사회에 속해 있지 못했을 것이며, 부당함을 외칠 목소리 또한 그리 크지 않거나 없었을 것이다.
“카트라이트는 심지어 흑인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은 그들이 가진 열등한 몸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흑인들은 출분증 때문에 노예 상태를 벗어나 도망가려 하고, 무기력하기에 게으르고 교활하며 농기구 같은 재산을 망가뜨린다고 카트라이트는 말했다. 그에 따르면 Dysaesthesia Aethiopica로 불리는 정신질환 때문에 흑인들은 주인의 재산을 망가트리고자 하는 정신적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126pg
이 사례를 통해 한 집단을 망치는 것이 얼마나 손쉽게 이루어지는지 볼 수 있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권력자(전문가)의 권위와 사람들의 무분별한 수용은 혐오를 정당화시켰다.
“실제로, 전문가들이 결정한 진단명은 몸과 정신의 상태를 평가하는 데 점차 지배적인 힘을 얻기 시작했다.” 140pg
“예를 들어,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결핍되어 있다는 의학적 주장은 백인 여성을 고등교육, 투표권, 사유 재산 소유와 같은 권리로부터 배제하는 데 힘을 실어주었다.”
“사람의 몸과 정신을 두고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관의 숫자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모두에서 급격히 늘어났고, 수혜자는 때로는 그런 구분을 원하기도 했고, 또 때로는 강요당했다.” 141pg
책에서는 장애를 의학적 진단명에 의존해서 장애를 구별하고 이해하는 것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의존이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은 깨우쳤지만, 솔직히 완전히 이해했다고는 못하겠다. 장애를 정의하는 작업은 복잡하고 어려운 것 같다. (혹시 장애의 역사를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이 부분을 같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예를 들어, 1796년 메사추세츠주 법은 지역 행정부에게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신이상자를 지역 교도소에 감금하는 것을 허락했다. 빈민 구호소, 교도소, 수용소는 종종 다양한 사람들을 감금하는 곳으로 기능했는데, 그중에는 남편이 없는 가난한 임신부 같은 도덕 위반자, 과음하는 사람, 백치이거나 정신이상자로 여겨지는 사람, 뇌전증을 가진 사람 그리고 지역 행정관이 불평하게 느꼈던 사람이 포함되었다.” 145~146pg

[5장: 나는 장애가 있어서 중노동이 아닌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해]

장애의 제도화, 1865~1890
“장애 연금 시스템은 점점 의존했는데, 그 시스템에서 장애는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뜻했다. 따라서 장애인이 노동을 해서 임금이나 경제적인 보수를 받을 경우 그것은 장애인의 정의와 충돌하는 논리적 모순을 야기했다.”
“또한 점차 법과 의료전문가가 장애를 정의하는 경우가 늘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장애는 젠더, 인종, 계급에 따라 그 의미가 달랐다.” 173pg
결국 한국 사회가 60대를 복합적으로 정의하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취업 산업에서는 그들은 은퇴 적령기로 대하지만, 복지 산업에서 그들은 노인 일자리 대상자다. 하나의 정의로는 그 대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경우인 것이다. 장애인을 노동 할 수 있는 능력의 여부로 판단했으니, 그들이 경제적 이익을 창출해 낸다는 사실 자체가 장애인에 대한 정의를 배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북전쟁 퇴역군이 집으로 돌아오고, 도시가 확장되고 사업재해가 증가하면서, 미국의 도시들은 ‘Ugly Law’라고 불리는 법을 통과시켰다. 장애인은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177pg
‘Ugly Law’란 19세기 중후반 미국이 여러 도시에서 제정된, 이른바 흉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 공공장소에 나오는 것을 금지하던 법을 지칭하기 위해 1970년대 연구자들이 만들어 낸 용어라고 한다. (책에서 발췌)
“산업화는 장애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냈다.”
(Lavinia Warren)
“그들은 비슷한 크기의 어린아이에게 친밀감을 표시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행동을 내게 하려고 했고, 나는 여성으로서 본능적으로 위축되었다.” 178pg
화려한 영상미와 훌륭한 사운드 트랙을 갖춘 영화 ‘위대한 쇼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장애의 역사>를 읽으면서 이 영화의 이면을 마주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P.T 바넘과 Charles Stratton은 실존했던 인물들이다. 바넘은 장애인들을 전시하는 프릭쇼를 하던 사업자였고, 스트래넌은 생전에 ‘엄지 손가락 장군’이라 불리며 프릭쇼에 참여했던 공연자였다. 영화 제작자들은 왜 그들의 이름과 삶을 그대로 이용했으며, 프릭쇼의 역사를 영상화하면서 장애 인권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았는지 등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장애인을 착취하고 즐길 거리로 전락시킨 역사적인 사람이 ‘위대한 쇼맨’이라는 이름 아래 현대사회에서 또 다른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며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내가 장애의 역사가 폄하되는 영화를 즐겼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린다. 마음이 무겁다.
“사회적 태도와 권력관계가 19세기 정신 이상과 적절한 행동을 정의하는 데 영향을 미쳤음을 명확히 했다.” 184pg
“여성을 교육하는 일에 대한 회의주의는 계속 남아 있었다. ~ 1895년 몇몇 남학생들은 그들이 쉽게 참석할 수 있었던 사이드쇼(서커스나 프릭쇼에서 진행되는 소규모 공연)의 언어를 이용해, 여성들을 ‘프릭’이라고 표현했다.” 186pg
(Agatha Tiegel)
“여성은 지적으로 조금도 열등하지 않다. 단지, 그 능력을 사용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발전이 느린 것뿐이다.”
“여성이 감정적인 성향과 논리와 판단력 부족 때문에 스스로 자유를 누리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들은 노예제 때문에 노예에게 생겨난 여러 문제들을 이용해 노예 해방을 반대하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187pg

[6장: 저능아는 삼대로 충분하다]

진보의 세기, 1890~1927
“과학자와 일반인 모두 점차 신체적 ‘결함’을 정신적, 도덕적 ‘결함’과 연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194pg
“그들(권력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그레고어 멘델의 식물 유전학(우성과 열성) 대한 과학적 연구와 새롭게 개발된 비네-시몽 지능검사를 사용해~ 이 주장은 긍정적인 형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게 된다고 말하며,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 사이의 경제적 불평등을 설명할 때 편리하게 이용되었다.” 195pg
“샤프 박사에 따르면, ‘퇴행 계층’에는 ‘정신이상자, 뇌전증 환자, 저능아, 백치, 대다수의 성적 변태, 알코올 의존자, 매춘부, 부랑자와 범죄자, 빈민가에서 발견되는 습관적인 게으름뱅이들, 그리고 고아원에 있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포함됐다. 이렇듯 퇴행한 사람들은 많았고, 대응이 필요했다.” 196pg
퇴행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지난 역사에서 강제로 시설 수용되었던 사람들이나 현대 사회에서 불평등을 경험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 입국심사를 담당했던 엘리스섬의 한 관료는 정신박약이 ‘그 형태나 정도가 각기 다른 정신이 약한 사람들을 담는 쓰레기통’으로 편리하게 쓰이고 있다고 기록했다.” 198pg
“노동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민자들을 배제하는 게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장애를 가진 이민자들은 설사 미국에 들어오더라도 차별을 경험할 것이라는 믿음 역시 가지고 있었다.” 207pg
장애의 역사를 들춰보면, 이 모든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권력자들이 말하는 ‘대의’를 위해 실행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미국은 민주주의에 걸맞는 능력있는 몸, 노동하고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기 위해 분류를 시작했다. 문제는 이러한 차별 매커니즘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뿌리내렸다는 점이고, 차별 안에서도 중첩적인 소외가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자본주의 체계 안에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설령 그 누군가가 불구일지라도 한 개인의 경제적 능력이 월등하다는 사실은 차별을 덜어주었다. 이 사회에서 가난한 장애인은 보이지도 않고, 보여서도 안되는 존재였을 뿐이다.
“비장애중심주의와 특정한 형태를 한 미국인의 몸에 대한 열망은 많은 잠재적 이민자들을 추방하는 이유가 되었다.” 208pg
현재 우리나라가 이민자나 난민 수용을 꺼리는 이유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인종 혹은 국가에 대한 꺼려짐, 빈곤함이 장애의 맥락에서 해석된다면 말이다.
“LPC(Likely to become a Public Charge; 공공에 부담이 될 것 같은)조항은 계급, 민족, 인종, 성적 지향, 젠더에 따라 다른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당시에 미국의 많은 여성들은 임금 노동을 하지 않았고 요구받지도 않았다. 하지만 LPC 조항은 이민자 여성이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육체 노동이 가능한 몸이기를 요구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여성들은 충족시킬 필요가 없는 조항이었다. 적절한 여성다움의 요건이 계급, 민족, 인종에 따라 달았던 것이다.” 209pg
결국 LPC조항은 또 다른 노예제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형태가 달라지고, 사족이 늘어났을 뿐 근본적으로 제도와 법안에 내제된 혐오는 변치 않았다.
“국경에서 입국 심사를 하는 법적 구조와 물리적 장벽은 미국 시민의 몸에 대한 이상향이 집행되고 강화되는 장소가 되었다.”
‘빈곤의 쓸모’라는 개념이 생각난다. 이 상황에서는 ‘차별의 쓸모’라고 해야 할까?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내가 저렇지 않아서 다행이야’. 관리자들에 의해 자행되었던 차별은 내국인과 이민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를 시시때때로 옥죄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절차는 모두가 특정 인종, 장애 여부, 성별, 나이 등을 가지지 않았음에 안도하거나, 원망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또, 더 나아가서 ‘능력 있는 사람들’이 타인을 멸시하고 차별하는 데 힘을 실어줬을 것이다.
“이 환자는 백인 여성이 자신에게 친절한 유색인종 남성에게 보이는 정상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명시했다” 212pg
“상당한 수의 여성들이 근친상간이나 성적 학대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213pg
여성에게 필요한 행정적 보호조치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문제의 대상으로 치부했다.
“단종” 214pg
“남성의 수술이 훨씬 더 간단했음에도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빈번하게 수술이 진행되었다.” 215pg
“그들은(전문가와 권력가) 계급 간 불평등이 커져가고 인종과 젠더에 따른 권력관계 다툼이 심해지고 대규모 이민이 이어지던 시기에,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17pg
개인의 권리를 사회가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그것이 당시의 ‘대의’에 부합할 때 생기는 인권 말살.
(William Lee Howard) “하워드에 따르면 ‘남성적인 개념인 독립’에 사로잡힌 여성들이 ~ 그러한 여성들은 같은 계급에 속하더라도 다른 수준으로 퇴행한 역겨운 반사회적 존재이자, 성적으로 변태인 여성이었다.”
“그에 따르면 퇴화된 몸과 정신으로 젠더 장애(Gender Disability)라는 면에서 닿아 있었다.” 218pg
“벅 대 벨 대법원 결정(저능아는 삼 대로 충분하다)은 아직까지도 번복된 바 없다.”
“그 시기 정신이상, 정신박약으로 여겨진 사람들을 위한 시설은 본래 그들을 교육하고 사회에 동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던 곳에서 구금을 위한 장소로 변했다. 더 많은 시설들이 ‘식민지 계획(Colony Plan’이라고 불리는 이념적, 조직적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220pg
“한가운데 있는 관리동이 사방으로 퍼진 오두막과 길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
“플래시 대 퍼거슨 판결(1896)에서 분리정책이 평등한 것이고 공공의 선에 이바지 한다고 선언하고 필리핀 등에서 미국 식민주의가 한창이던 때 미국에서 ‘식민지’라고 불리는 수용시설이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21pg
방사형 형태 파놉티콘의 형태와 유사했을 것 같다. / 분리정책이 redling과 게토의 형태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토착민 부족에게 정신이상, 정상성, 표준화된 건강 개념은 모두 낯선 것이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수용소에서 토착민에게 매우 폭력적인 형태로 강요되었다.” 224pg
“영적인 살인의 한 형태” 225pg
하등한 시민을 제거 및 개혁하고 민주주의을 바로 세운다는 잘못된 믿음 아래 자행된 폭력. 역사가 끊임없이, 어떨 때는 동시다발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너무나 유사한 사회적 맥락과 사건이, 특히 혐오의 역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백인이 아니라는 점과 장애를 연결지어 생각하는 시서 수용 이념을 맞닥뜨린 것이다.” 226pg
“그 역사는 독특하면서도 잊을 수 없을 만큼 흔한 일이다.” 229pg
“인종주의는 결국 고통스럽고 효과 없는 외과시술로 이어졌고, 이는 소외된 집단에서 맹인이 증가하는 결과 이어졌다.” 230pg
“산업화는 부와 여가의 세계로 안내하리라 약속했지만, 그것은 놀라울 만큼 많은 미국 노동자를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231pg
“알지 못했던 불구자의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정상이었다고 관찰한 연구는 말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성공적인 불구자’와 ‘구걸하는 유형의 불구자’사이에 선을 그으며 결론을 내렸다. 계급은 중요했다.
“사람들은 점점 선한 장애인과 나쁜 장애인을, 선한 시민과 나쁜 시민을 구분하기 시작했는데, 가장 중요한 기준은 그 사람이 생계를 위해 돈을 벌고 있는가 여부였다.” 236pg
“남자다운 불구자, 성공적인 불구자, 감사히 여길 줄 아는 장애인 퇴역군인은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노력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237pg
슬픈 단어조합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또 모두가 ‘비정상’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달려야 했으니 말이다.
“성, 계급, 인종, 젠더, 민족은 장애와 질 높은 시민이라는 개념과 강제로 교차했다.” 238pg

[7장: 우리는 양철컵을 원하는 게 아니다]

토대를 다지고 무대를 만들다, 1927~1868
“우리는 [구걸용] 양철컵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일자리를 원한다.”
“지역과 연방 정부가 ‘고용될 수 없는 범주로 모든 장애인을 분류해 노동구제프로그램에서 배제했기 때문이었다.” 242pg
“우리는 두 눈이 감길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어. 우리는 우리의 언어로 서로에게 이야기하는 걸 사랑했어.” 244pg
“농인들도 사회적으로 소외된 존재였지만, 진짜 장애인이라고 여기는 이들과 스스로를 구분하고자 했다.”
“장애 활동가들이 자신들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면, 장애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신들이 자유로워질 거라 생각했다. 농인 지도자들은 뉴딜 고용정책의 장애인 차별에 맞서 싸웠던 장애 간 단체인 신체장애인연합의 장애 활동가들과의 동맹을 거절했다.” 247pg
“이러한 상황 때문에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농인학교에서는 자신들만의 수어를 만들었는데, 이는 표준 미국 수어와도 다르고 때때로 이웃 동네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농인학교에서 사용하는 수어와도 달랐다. 당시 상황에서 이러한 언어적 발전은 부득이한 것이었지만 인종분리가 계속되는 데 기여했다.” 248pg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루스벨트가 몇몇 부분을 디자인하기도 했던 웜스프링스의 시설은 장애인이 건물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건축의 초창기 사례다.”
“그러나 소아마비의 이념, 경험, 시설은 인종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웜스프링스는 휴식처였지만, ‘장애인 엘리트 집단을 위한 휴식처였다.” 253pg
“실제로 20세기 초반 동안 전국적으로 의료, 재활, 전문가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때때로 아시아계 미국인이 소아마비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며 그들을 시설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254pg
(Botton Blatt) “그러나 블랫은 1979년 시설 개혁을 포기한다. 그는 직설적으로 결론을 말했다. ‘우리는 정신지체자 수용시설을 폐쇄해야 합니다.’ 이후 블랫과 사람들은 탈시설 운동에 힘을 쏟는다.” 261pg
“젊은 남성들을 전쟁에 내보낸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는 왜 자신들에게 목숨을 바치는 희생을 요구하면서 전시산업 일자리나 시민권에 대해서는 제한하고 차별하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능력있는 몸을 가진 백인 여성들 역시 같은 의문을 품었다.” 262pg
“타이어 배급 정책 때문에 장애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의사가 정식으로 인정한 진짜 장애인의 경우에는 자동차 타이어 구매를 예외적으로 허가해야 하지 않을까?” 263pg
“전시 배급 정책은 공동체에 기여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이ㅜ해 일하고자 했던 장애인의 발목을 잡았다.”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생각/ 명백히 부조리한 상황이지만 적절한 사회, 행정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폴 스트래챈) “개인에 초점을 맞춰 자신의 장애에 감정적, 신체적으로 ‘적응’하는 것보다는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구조와 행태를 바꾸는 정책과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스트래챈은 장애가 계급과 노동 문제라고 주장했다.” 269pg
“사람들은 장애 사이에 위계를 만드는 것이 ‘자신은 진짜로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기에 차별받거나 따돌림을 당애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소수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비장애중심주의를 일반적으로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것이라고 선언하기 시작했다.” 276~277pg

[8장: 난 운동가인 것 같다. 운동은 마음을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권리와 부정된 권리, 1968년 이후
“페미니스트, 아프리카계 미국인, 게이와 레즈비언 활동가처럼, 장애인들은 그들의 몸이 자신을 결함 있는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물론, 그들의 몸은 정치적, 성적, 예술적 힘의 원천이 될 수도 있었다.” 285pg
“우리는 사고 방식의 장볍과 건물의 장벽을 모두 바꾸고자 했다.” 286pg
“운동 참여자들은 장애가 단순히 의학적, 생물학적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장애가 장애인의 삶을 불필요하게 해치고 제한해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고립, 억압으로 이어지도록 차별하고 부당한 낙인을 찍는 사회적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287pg
“제 504조에 장애인은 ‘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모든 활동과 프로그램에서 차별을 받거나 혜택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고 서술했다.” 292pg
“기저귀를 갈아주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는 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장애부모가 비장애인 부모에 비해서 아이를 학대할 위험이 더 높지 않다는 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결과에서 드러났음에도 그러하다.” 301pg
“미국에서 흑인, 여성, 노인, 그리고 다른 집단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장애인 공동체에 평등은 천천히 들어오고 있다.”
“이는 건축 장벽, 접근 불가능한 교통수단, TTY와 미국 수어 통역자의 부재, 점자 자원의 부재 때문이었다.” 309pg
“미국 역사를 통틀어서, 어떤 몸이 장애가 있는지 규정할 수 있던 권력이, 규정당하는 몸을 가지 이들이 경험했던 예속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데 기여한 것은 분명하다.” 316pg

<느낀점>

처음 이 책을 펼쳐 읽은 순간이 기억난다. 가장 좋아하는 독립서점에, 가장 좋아하는 책이 모아진 선반에 놓여있는 걸 집어들었다. 가장 앞쪽에 위치한 번역자의 글이 보였다. 그는 번역을 하면서 혹시나 오역이 있거나, 포용적이지 못한 표현을 사용하진 않았을지 고심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 이런 고민을 하고 책을 썼다면 그가 전하는 장애에 대한 세심한 이야기들이 틀렸을 리가 없다고, 혹여나 그랬더라도 이 번역자가 누구보다 빨리 자신의 오류를 수정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렇게 이 책을 만났다.
장애의 역사는 장애만의 역사가 아니다. 젠더, 인종, 경제적 수준, 계층, 나이 등 사람이 지닌 모든 조건들이 장애와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차별과 혐오라는 맥락 말이다. 앞선 요소들은 현재까지도 장애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되곤 한다. 장애의 역사는 길고도 비참하고, 가슴 뛰는 투쟁의 역사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혐오가 한 집단을 죽음으로, 가난으로, 열악한 사회 관계와 ‘시설’로 몰아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었다. 장애를 결핍으로 정의하는 모든 과정에 한편에 화려한 비장애 중심의 역사가 동시 진행되었고, 때로는 어딘가에서 마무리된 역사가 나의 과거와 현재에서도 처참히 자행되었음을 확인했다.
혐오와 차별이 시작된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멸시의 대상은 사회에 여전히 덩그러니 남겨져있다. 변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세상이 그렇게나 빨리, 또 많이 변했는데 사람의 인식이 왜 그렇게 선명한 낙인을 남기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장애를 결핍이라고 정의한 사람들의 터무니없는 말에 모든 장애인들은 저항했다. 자신들도 시설 밖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음을, 여성들에게도 교육의 받을 권리가 있음을, 다양한 성적 가치를 지향할 수 있고, 인간은 그 존재로서 가치있음을 말하며 ‘능력 있는 몸’이라는 규정을 깨 부쉈다. 덕분에 장애의 역사도 조금씩 흐를 수 있었다. 장애의 역사는 소외와 차별, 불평등의 역사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만들어지고 있는, 나의 현재가 누군가의 과거이고, 미래인 그런 혼재한 역사. 우리는 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반성하고 느끼고, 분노하고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이 책이 각 나라별로 한 권씩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한 사회의 구조를 잘 들여다 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든 장애와 도시를 향해 내달릴 때 내 뒤에 <장애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누군가가 이어온 장애역사의 바톤을 받아 나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좋다. 장애라는 단어에 녹아든 수 많은 차별에 대해 기득권자와 저항자, 그리고 수많은 주체들의 목소리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에게 다음 바톤을 넘긴다.